▲제19대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한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권우성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했고 야권이 '패배'했는가?
선거의 결과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이 이기고 야권이 진 것이 분명하다. 여당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야권이 호기롭게 기대했던 것보다 초라한 점수를 받았다고 자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개별적으로 아쉬운 점이 여러 군데 있었고 진보신당과 녹색당의 부진도 너무 애석하다.
모든 언론과 논평가들은 박근혜의 능력과 야권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분위기가 이러하고 엄정한 자기비판을 반드시 해야 하겠지만, 한 번쯤은 정반대로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선거를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에서의 양적 결과로 볼 수도 있고, 시계열상의 추세로 판독할 수도 있고, 상징성과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시간상의 추세를 보자. 가장 간단한 것은 18대 국회에서의 의석수와 이번 선거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4·11 총선 직전 각 정당의 의원수 분포와 이번 총선 결과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은 153명에서 152명으로, 민주통합당은 81명에서 127명, 통합진보당은 5명에서 13명. 이런 데도 야권이 일방적으로 패배했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4년 만에 체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선거가 보여주는 희망그런데도 야권이 '졌다'라고 인식된다면 그것은 전국적 분포에서의 대표성 부족, 그리고 적어도 다수당, 잘하면 과반수 이상 확보도 가능하다고 하는 거품이 자천타천으로 너무 크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대 총선의 민망한 성적, 그리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의 압도적 패배를 냉정하게 기억한다면, 그리고 선거 전후한 온갖 악재에도 이만큼이나마 선방한 것은 국민이 야권의 손을 잡아 일으켜준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더 나아가 범야권은 140석이라는 의석을 가지고 민간인 불법사찰, 4대강사업 등의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상징성과 의미로 봐서도 야권이 희망을 가질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 우선 수도권에서의 선전, 몇몇 경합지역에서의 가치있는 승리, 통합진보당의 약진,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정당(민주통합당)과 계급정당(통합진보당) 간 연대의 실험을 들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보아 선거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상상해본다면 그래도 첫번째 실험으로서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다. 통합진보당이 이만큼이라도 분투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전례 없이 획기적인 일이다. 보수 일변도이던 우리 정치 스펙트럼에 한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실질적인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정활동의 많은 부분에서 민주통합당과 협력하는 쪽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정당이 앞으로 여러 차원에서 연대를 해나갈 경우 '민주-진보'가 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이해를 거쳐 아시아 최초로 사민주의적이면서 동시에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일종의 대연정이 탄생할 가능성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잊어선 안 된다. 이번 득표율로 보면 민주와 진보를 합친 것이 46.68%이니 새누리의 42.77%를 앞지른다. 이는 특히 대선을 고려할 때 유의미한 수치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