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만 먹었던 아들들은 잘 모르나 봐요

[포토에세이] 어머님께 염색을 해드리고 왔습니다

등록 2012.04.06 13:22수정 2012.04.06 13:22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구두회(예수이야기교회)목사님께서 글을 주셨습니다.


"어릴 때 형제간에 이유 없이 소소히 다투며 자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 넉넉한 시대가 아니라 옹기종기 하루하루 그저 내 부모님의 눈물과 땀방울 먹고 살아가는 거죠.

사과 한알 놓고도 한쪽 더 먹어볼 요량으로, 천리만리 가는 일도 아닌데 심부름 동생에게 미뤄 볼려고, 덜 헤진 양발 먼저 신겠다고, 왜 오빠에게만 도시락 바닥에 달걀프라이를 깔아 주냐고... -하략-"

목사님의 묘사는 한 치도 어김없는, 제가 자라던 시절의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왜 오빠에게만 도시락 바닥에 달걀프라이를 깔아 주냐고...'라는 말씀이 제 기억 속,  우리 모두의 누이를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차별받았던 누이들이 노모에게 더 애틋합니다.
차별받았던 누이들이 노모에게 더 애틋합니다.이안수

#2
엄마는 남동생에게만 보리쌀을 살짝 걷어내고 쌀밥을 퍼주었지요. 어제 낳은 달걀이 세 개뿐이니 달걀프라이의 하나는 할아버지 상에 올리고 한개는 가족상에 올리면 나머지 하나가 남동생의 도시락 바닥에만 깔리게 되지요.

 자식들의 복을 빌었던 어머니
자식들의 복을 빌었던 어머니이안수

정말이지 너무도 당당했던 차별이었고, 그 차별이 당연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효자보다 효녀가 더 많은지 모르겠어요.


보리밥 먹고 자란, 달걀프라이 깔린 도시락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자란 우리의 누이들은 진학 대신 먼저 공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오빠나 남동생 대신 돈을 벌었지요. 누이의 쥐꼬리 월급은 가정의 희망이었습니다. 오빠나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하면 가정이 일어서고 가문이 바뀔 것 같은….

그런데 모질게 차별했던 그 엄마을 애틋하게 섬기는 이는 시집간 그 누이들입니다.


 없는 살림에 많은 자식들을 근사하기위해서는 순서가 필요했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사실, 어쩔 수 없는 모든 동물의 공통된 선택입니다.
없는 살림에 많은 자식들을 근사하기위해서는 순서가 필요했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사실, 어쩔 수 없는 모든 동물의 공통된 선택입니다.이안수

하얀 이밥 먹고, 달걀프라이 홀로 깔아갔던 아들은 늙은 엄니가 항상 기다려줄 줄 아나 봐요.

#3
처는 한 달에 한번 고향의 엄마를 찾아갑니다. 연장근무로 얻은 휴가 하루를 보태어 이틀의 휴일을 만든 다음, 편도 700리 길을 갑니다.

그리고 엄마 얼굴보고,

 노환으로 기억력이 많이 감퇴하신 어머니
노환으로 기억력이 많이 감퇴하신 어머니강민지

흰머리 감추어드리고,
 머리 염색은 여전히 마다 않습니다.
머리 염색은 여전히 마다 않습니다.강민지

함께 목욕탕가고,
 머리 염색이 끝나면 바로 공중목욕탕으로 갑니다.
머리 염색이 끝나면 바로 공중목욕탕으로 갑니다.강민지

식당 갔다가 함께 잠을 자고,
 염색과 목욕을 마치고 시장기를 달래지요.
염색과 목욕을 마치고 시장기를 달래지요.강민지

집안 청소한 다음,
 어머니 홀로 계신 집, 홀로 계신 방
어머니 홀로 계신 집, 홀로 계신 방강민지

점심을 함께 먹고,
 이제는 딸이 다시 서울로 갈 때입니다.
이제는 딸이 다시 서울로 갈 때입니다.강민지

푼돈 몇 푼 손에 쥐어드리고 다음날 오후에 다시 700리를 거슬러 옵니다.
 이 적은 용돈은 예지상회에 모이신 동네어른들과 간식을 나누는데 사용한다.
이 적은 용돈은 예지상회에 모이신 동네어른들과 간식을 나누는데 사용한다.강민지

그러면 엄마는 딸이 떠난 텅 빈 집에 있는 대신 동네의 편한 말벗인 예지상회의 할머님께로 갑니다.
 예지상회의 주인은 할머님입니다.
예지상회의 주인은 할머님입니다.강민지

 어머님이 하루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의탁하는 동네의 예지상회
어머님이 하루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의탁하는 동네의 예지상회강민지

땅에 닿을 듯 등이 굽은 엄마가 올 봄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운 매화나무 같은 웃음을 내년에도 웃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쌀밥에 달걀프라이 먹고 자란 아들들은 잘 모르나 봐요.
 올 봄에도 어김없이 핀 매화나무
올 봄에도 어김없이 핀 매화나무강민지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어머니 #효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5. 5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