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조직 '미림팀'에서 녹음한 이른바 'X파일' 테이프(왼쪽. MBC 화면촬영)와 97년 세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
연합뉴스/오마이뉴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는 국회의 통제라는 중대한 고비를 맞이했다. 국회는 1993년 12월 안기부의 활동을 제약하는 두 가지 법안을 제개정했다. 하나는 국민의 사생활 침해를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기부의 전횡과 행정부에 대한 통제를 막기 위해 안기부 '보안감사'를 전면 폐지하는 안기부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안기부의 힘이 빠진 것은 이때부터다. 현행 국가정보원법은 직무(제3조)를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다만, 각급기관에 대한 보안감사는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는 '더러운 일'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1994년 2월에 부임한 오정소 4국장(이후 차장 승진)은 정보수집 실적이 저조하다고 판단해 6월경 미림팀을 재구성했다. 그해 7월부터 1997년 11월까지 활동한 2차 미림팀은 하루 1개씩 1000개 정도를 생산했다. 검찰이 공운영 팀장 집에서 압수한 '주요인물 접촉동향' 보고서철에 따르면, 2차 미림팀은 총 1170회에 걸쳐 연인원 5400명의 동향을 사찰했다.
1차 미림팀과 비교하면, 인적사항이 파악된 도청 대상자(총 646명)는 정치인(273명)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84명), 언론계(75명), 재계(57명), 법조계(27명), 학계(26명), 종교계 등 기타(104명) 인사로 확대됐다. 공운영 팀장이 유출해 삼성과의 뒷거래에 활용된 '삼성 X-파일'은 그 중의 하나다. 연도별 도청 횟수는 ▲ 94년 94회 ▲ 95년 159회 ▲ 96년 105회 ▲ 97년 170회 등이었다. 도청 횟수가 많았던 해는 각각 지방선거와 총선 그리고 대선이 있던 해다. 도청대상을 보더라도 1997년 대선 전에는 여당 내부동향과 야당 대통령 후보(김대중) 측근인사의 동향이 주요 타깃이었다.
미림팀의 동향 보고는 공식 보고라인이 아닌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와 이원종 정무수석에게도 유출됐다. 미림팀의 도청수집정보는 안기부장의 대통령 주례보고서에도 포함됐으며, 오정소 차장은 경복고-고려대 동문인 김현철씨와 이원종 수석에게 별도 보고했다. 김현철씨와 이원종 수석은 동향정보의 해당 정치인에게 전화를 해 "벌써 움직이면 어떡하냐"며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미림팀 도청자료를 활용했다.
YS 정부의 미림팀 부활, MB 정부의 공직윤리지원관실 부활현행 법령상 공직자에 대한 직무감찰은 각 부처 감사관실이나 최고 감사기관인 감사원이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30일 공개된 사찰 문건으로 확인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은 YS 시절 2차 미림팀의 '재건'과 판박이다. MB 정부는 정부 직제를 개편할 때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무총리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을 폐지했으나 2008년 5~6월 촛불시위를 계기로 그해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이름을 바꿔 '부활'시켰다.
'부활'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카'와 동향으로 최근 '몸통'을 자처하며 국민에게 호통을 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핵심 역할을 했음은 본인의 실토로 밝혀졌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사실을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 방송<이털남>(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폭로한 장진수씨(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 따르면, 이영호 비서관은 지원관실의 보고서가 올라오면 민정수석실 보고용과 직보(직접 보고)용으로 나눠 직보용은 'VIP'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사찰 문건 중 '복무동향 점검 보고양식'에는 보고서를 쓸 때 "구체적인 해당 상황에 대한 평가와 대상자의 역할에 대해 본인이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기술하라"는 부분이 나온다. 늘 자신이 쓴 첩보 보고서를 대통령이 본다는 일념으로 작성하라는 주문은 국가정보원이 정보관(I.O)들에게 강조하는 업무지침이다. 실제로 I.O들의 첩보보고가 '대통령 주례보고'에 포함되면, 언론사의 '특종'처럼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장씨는 <이털남>에서 "저희 업무 중 '인사 스크린'이라는 장·차관·청장 평가, 직무역량 평가가 있는데, 50명 가까운 장·차관들의 스크린 자료를 철하고 맨 앞장에 순위표를 넣고 고용노사비서관실에 갖다주면 그것을 '직보했다'고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 전 과장이 '그래서 우리는 (민정수석실이 아니라) 고용노사비서관실과 업무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2010년 5월에는 직보용으로 따로 작성된 보고서를 직접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정수석실에는 스크린 자료만 줬는데 고용노사비서관실에는 (개인별 종합점수를 매긴) 순위표를 첨부해 전달했다"면서 "2009년 7월 순위표가 포함된 자료를 이영호 비서관이 보고하고 나서 이 대통령이 '바로 이거야'라고 말하며 칭찬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직제와 업무 영역상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장차관 비리 '스크린'은 민정수석실 몫이고, 공직자 '인사 검증'은 공직기강비서관 몫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차관 인사와 관련된 보고를 소관부서인 청와대 민정수석실 대신 실제 업무와 관련이 없는 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받은 셈이다.
감사원과 국정원 그리고 검·경 기능 합친 사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