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의 상징인 독수리상과 도서관 전경
연세대학교 홈페이지
내가 다니는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록금을 자랑한다. 그나마 등록금이 가장 저렴한 인문대, 그중에서도 경영학과와 행정학과에 비해 별 인기 없는 학과에 진학했더라도 나의 한 해 등록금은 1000만 원에 육박한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에 두 끼만 먹고, 학교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한다하더라도 학교생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책값, 활동비 같은 걸 더하면 '대학'에 다니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하는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룰 만큼 대학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클까라는 고민이 깊어진다.
원래 저렴했던 서울 시립대의 등록금이 반값이 되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보니 대학 수업의 원가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대학을 두고 '학문의 전당'이니 '진리의 상아탑'이니 하는 말들이 제 값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교수와 학생들이 둘러앉아 서로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하며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개강 첫 날 들어간 강의실의 모습은 참 실망스러웠다. 20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좁디좁은 강의실에 빽빽하게 앉아있었고, 그로도 모자라서 늦게 온 학생들은 강의실 뒤편과 옆쪽에 서서 수업을 들었다.
강의실의 가장자리에서는 교수의 모습이나 PPT화면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수강신청을 잘 못했던 터라 듣고 싶은 수업은 못 듣고, 그저 학점을 채우기 위해 흥미도 없는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때는 대학에 왜 왔나 싶기도 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지만 학생들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은 너무나도 낮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다보면, 토플이니 토익이니 하는 것들로 사교육 시장의 최대 소비자가 바로 대학생이라는 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시장논리에 잠식되어 더 이상 '학문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나 역시 경쟁을 강요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남은 시간들이 아득해진다.
얼마 전부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거의 신드롬처럼 떠올랐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문구 중 하나다. 반짝반짝 빛날 것만 같은 수많은 청춘들이 감당해 내야 하는 현실은 사실 시궁창도 못 되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밤새 아르바이트를 해도 제대로 된 방 한 칸 얻기가 힘든 이들에게 감히 누가 '그러니까 넌 청춘인 거야!'라고 말할 수 있나. 등록금이 없어 배우고자 하는 꿈을 꿔볼 수조차 없었던, 그렇게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게 감히 누가 '그렇게 아프니까 청춘이야!'라고 할 수 있을까.
빛나는 명문대 졸업장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기가 너무나도 힘든 사회에서 감히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명문대 생이건,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생이건 간에 끝없이 경쟁하고 타인을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모든 이들에게, 혹은 그 경쟁에서 낙오되어 배제되어가는 이들에게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픈 건 청춘이 아니라 그냥 고통일 뿐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주는 달콤한 유혹과, 청춘이니 젊음이니 하는 진부한 단어들이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가로막지 않길 바란다. 20대를 두고 반짝반짝 잘 포장된 '청춘'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그들이 마주하게 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짜 뼈 아픈 일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대학에 애착을 가지고 그리 열심히 다니지도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지 하며 기를 쓰고 덤비는 패기도 없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가 삶의 모토이고, '못돼 쳐먹은' 대기업들에는 취직할 생각도 없다. 잘 먹고 잘 살 욕심도 없고, 딱히 스스로가 청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고,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 희박한 가능성에 내 모든 것을 걸기엔 나는 너무 겁도 많고 게으르다. 절대 용감하지도 않고, 패기와 열정도 없는 그저 그런 대학생이지만, 그래도 단 하나 스스로에게 약속하고자 한다.
대학이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정체성들을 내 스스로에게 덧씌우지는 말자고. 내가 가진 이런 고민들을 놓아버리지는 말자고. 결국에는 내가 가진 '학벌'이라는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내가 그토록 불편하고 힘겨워하는 이 학벌 사회를 무너뜨리는 힘이 되도록 하자고 말이다. 대학으로 인해 이런저런 고민을 그러안고 사는 시간들의 연속이고,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공간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지만, 오늘도 역시 나는 온전히 내 세상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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