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사지 5층석탑.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국보 77호 '탑리5층석탑'을 본떠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국보로 지정을 받았다가 뒷날 보물로 격하되었다.
정만진
신적도는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만 먹으며 살았다. 그만큼 그는 검소하고 청렴하였다. 재산은 형제와 자식들에게 고루 분배하였고, 늙고 병든 노비와 황폐한 밭만 자신의 몫으로 가졌다. 또, 친척 중에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정성을 다해 구휼하였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힘을 다해 그를 구제하였다. 돌림병에 걸려 죽은 이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꺼리면서 외면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직접 나서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많은 선비들이 '신적도는 진실로 국가의 충성스럽고 진실된 신하이니, 마땅히 관리로 발탁해야 합니다.'하며 임금에게 추천하여 벼슬자리가 주어졌지만, 공은 단정히 앉아 날마다 책을 읽으며 살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의성의 수풀과 골짜기에 대명일월(大明日月)이 떴다"면서 우러러보았다. 신적도는 봉양면 분토리의 단구서원에서 모시고 있다.
국가지정 보물 '빙산사지 5층석탑'과 풍혈도 있고빙계서원, 이여송 글씨, 5층석탑 보물, 그리고 빙혈과 풍혈을 본 후 계속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산으로 에워싸여 금방 끊어질 것만 같이 여겨졌던 길은 평평한 모습을 유지하며 면소재지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 찬바람이 부는 빙산 일대였던가 싶게 길은 아늑하기만 하다. 주렁주렁 나무에 매달린 사과들은 땅에 닿을 듯 낮은 자세로 가을을 기다리고 있고, 청송군과의 경계선인 사곡령에서부터 흘러내린 금오천 맑은 물은 이곳이 참으로 청정 지역임을 '졸졸' 가녀린 소리로 간명하게 증언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