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고추전 만한 음식은 없어요

등록 2012.04.03 10:15수정 2012.04.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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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3월 30일) 비가 주루룩 주루룩 내렸습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장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햇볕이 쨍쨍날 때 장모님이 생각나지 않고 비 오는 날만 장모님 얼굴을 떠올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장모님 '고추전'입니다. 진주 '중앙시장'에서 약 20년 동안 고추전과 장어국에 동동주를 파셨는데 일품이었습니다. 목사가 대놓고 동동주를 마시지는 못하지만 한 번씩 한 모금을 마셨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 대놓고 동동주 마시지 못하고 '한 모금' 마셨는데 그 맛 잊을 수 없네

7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 장사를 하지 못하지만 설날과 추석 때 동동주를 담그면 "(목사가 술 마시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김 서방 한 번 마셔보게나" 하십니다. 그럴 때 모른 척하면서 마십니다. 물론 한 모금 정도만 마시니 술꾼 목사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동동주는 마시지 못하지만 장어국과 고추전은 아내에게 자주 해달라고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장어국을 정말 좋아합니다. 커다른 찜통에 장어국을 끓이면 이틀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부쳐주셨던 고추전 역시 좋아합니다. 명절 때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장모님은 외손자들을 위해 한 아름 싸주십니다.

 소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소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김동수

 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특히 홍합은 싱싱해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조심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특히 홍합은 싱싱해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조심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김동수

비 오는 날은 고추전

고추전은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더 당깁니다. 당연히 우리 집은 장모님이 중독시킨 고추전을 먹는 날입니다. 지난 금요일 비가 주루룩주룩 내리자 "여보 오늘 고추전 먹는 날이잖아요."라는 운을 떼자 아내는 "또 고추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고 있기에 소풀('부추' 경상도 사투리), 홍합, 고추, 밀가루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오는 날 당연히 고추전 아니예요."
"우리 엄마가 당신과 아이들 입맛을 버려놓았어요. 비만 오면 고추전 타령이니."

"비올 때마다 장모님 고추전이 생각나니 어쩔 수 없어요."
"다른 때 엄마 생각 좀 하세요."
"나같은 사위도 없지."
"당신같는 사위도 없다구요. 웃음이 저절로 나오네요."

 소풀+홍합+밀가루+고추 만 들어갑니다
소풀+홍합+밀가루+고추 만 들어갑니다김동수

당신 고추전 솜씨 점점 좋아지네


다른 것은 잘 하는데 아직까지 아내는 장모님 손맛은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장모님에게 독립한지 언 15년. 핏줄은 속일 수 없습니다. 손맛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고추전은 두껍게 부치는 것보다 얇게 부쳐야 맛입니다. 그래야 노릇노릇하고, 약간 바삭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두꺼우면 바삭한 맛이 없이 때문입니다.

"당신 고추전 부치는 솜씨 점점 좋아져요."
"내가 모를까봐요. 비가 오면 또 부쳐 달라고 할 것이니까. 미리 선수를 치는 거잖아요."

"그 때는 그 때 일이고. 정말 장모님 맛 80% 정도는 따라 붙었어요."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노릇노릇 구운 고추전.
노릇노릇 구운 고추전. 김동수

고추전에는 동동주가 최고지

고추전 부치는 솜씨가 좋아졌다는 말에 아내는 싫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역시 아내는 아주 작은 칭찬이 모든 것을 다 얻는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 고추전을 무려 4개나 먹었습니다.

"고추전에는 장모님 동동주가 최고인데."
"또 엄마 타령이네. 엄마 이제 몸이 힘들어 동동주 담지 못해요. 그리고 당신 목사 맞아요. 동동주 찾게."

"아니 한 모금씩 마셨던 것이 생각나서 그렇지. 한 모금도 못 마시나."

정말 그렇습니다. 생각납니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장모님 손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생각납니다. 고추전 4개를 먹으니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학교를 마친 막둥이가 집에 왔습니다.

"엄마 고추전 부쳤어요."
"응. 아빠가 비만 오면 고추전 부쳐달라고 하잖아."
"나도 먹고 싶어요."

"당연히 먹어야지."
"엄마 고추 안 매워요?"
"안 매워. 매워도 조금 참아. 너는 매운 것은 너무 먹지 못해. 조금씩 먹어도 괜찮아."

 고추전을 입에 넣기 바쁜 막둥이
고추전을 입에 넣기 바쁜 막둥이김동수

 아예 입으로 밀어넣습니다
아예 입으로 밀어넣습니다김동수

막둥이 먹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입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앉아 내리 두 개를 먹었습니다. 대단한 먹성입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좋아하는 막둥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아내의 작은 수고로 우리 집은 비만 내리면 고추전 잔치를 합니다. 온 가족이 먹기 싫을 때까지 먹어도 5000~6000원이면 됩니다. 비 오는 날 고추전 어떠세요. 온 가족의 기쁨입니다.
#고추전 #동동주 #비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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