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개발구역에서 추계예술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뉴타운 재개발을 풍자한 가상의 영화 '벌거벗은 부가현'의 영화관 설치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전민성
길을 지나가다가 학생들의 설치퍼포먼스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주민 장용운(51, 북아현)씨는 아현동에서 30년째 살고 있다고 소개하며, "서울시의 재정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또 헌 집은 재개발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서울시장은 왜 (그 넓은 구역의) 새 집들을 재개발 구역으로 묶었는지 그 질문에 꼭 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새 집을 부수고 다시 아파트를 짓는다면 그 재정이 너무 아깝지 않냐"고 반문하며, "나는 처음부터 재개발에 호응하지 않았고 지금껏 반대하고 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국가 시책으로 멀쩡한 집을 허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북아현동에 사는 남아무개(70, 북아현동)씨는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던 한 아파트의 재건축 과정에서 "조합추진위, 시공사, 법조계가 모두 한 통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특히 법조계와 재개의 유착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씨는 "특히 한국의 법조계 출신들은 매년 발간되는 연감을 통해 동문, 연수원 출신 선후배 등의 연락처와 이름을 다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이 많은 돈을 들여 판검사 출신의 고문 변호사를 두는 것은 선후배 관계를 이용해 재판에서 후배 변호사들이 선배를 이기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며, 더러는 돈을 더 주면서 소송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또, 1-3구역 조합원이라고 소개한 한 주민은 "지난 5-6년 동안 조합이 쓴 돈이 100-200억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꾸 공사를 미루면 이미 나간 주민들을 다 죽이는 꼴"이라며, "처음 분담금 금액이 있는데 공사가 늦어지면 한 달이면 10억에서 20억까지 이자가 늘어나서 결국 아파트가 한 달에 몇 채씩이 날아가는 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나가다가 학생들이 설치하는 영화관 그림들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윤아무개(62)씨는 이것이 추계예술대 졸업생과 학생들이 벌이는 설치 퍼포먼스라고 설명하자, "본래 남자들은 야한 그림에 눈이 가게 되어 있어"라고 웃으며 말했다. 재개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조합이 돈을 다 쓰고 이제 와서 돈 내놔라 한다"며 "재개발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본래 전통적인 조선의 정치형태는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독단적으로 정책결정을 할 수 없었고 관리들이 참여한 가운데 긴 토론을 거쳐 의견을 조율하고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여,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이것을 '당파싸움'으로 폄하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였음에 틀림없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고 본래 가지고 있던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린 요즘, 서로 다르지만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던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민과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며, 그런 정직한 소통이 가능한 안전한 광장의 확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양심을 가진 언론이기도 하고, 지역의 반상회이기도 하고,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마을 골목의 언저리이기도 하다.
어떠한 정책이든 진실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우선 주민과 국민의 정직한 소통이 가능한 소통의 공간부터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벌거벗은 부가현'이라는 가상영화의 임시 상영관은 짧게나마 거리에서 주민들이 모여 스스로의 의견을 내고,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광장'이 되어 주었다. 여기서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은 영화관이 설치되고 나흘이 채 못 된 지난 29일 오전, 이 건물에 철거를 위한 철근 구조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설치 퍼포먼스에는 북아현동 1-3 재개발구역에서 4개월째 노숙농성중인 상가세입자 이선형씨와 박선희씨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