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31일 오후 서울 은평구 대림시장을 찾아 4.11 총선 은평구갑에 출마하는 최홍재 후보를 지원하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날 박 선대위원장은 선거운동 시작 이후 수많은 유권자와의 악수에 따른 통증으로 붕대를 감고 유세를 펼쳤다.
유성호
만일 그 시절 우리에게 거짓을 가려낼 줄 아는 눈과 귀가 있었다면 우리의 첫사랑은 달라졌을까. 겉만 번지르르한 유혹에도, 그럴듯해 보이는 오해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우리가 조금 더 차갑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아마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차가울 수 있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 테니까. 첫사랑이 모두에게 아프게 남아있는 이유이자, 오늘 우리가 첫사랑을 닮은 이 영화 한 편을 두고 가슴이 설레는 이유이기도 하다.
29일부터 19대 총선의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정치는 사랑만큼 우리들 가슴을 설레게 하지는 않으니 조금은 차분하게 거짓을 가려내야 하겠다. 물론 생각만큼 간단치는 않다. 앞에서 절반쯤은 거짓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그조차도 장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판을 가득 채운 무수한 말들 속에서 한줌의 진실을 길어 올리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가령, 한미FTA를 밀어붙이면서 재래시장을 돌며 위로를 전하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새누리당은 재래시장 상인을 비롯한 중소 자영업인들을 보호한다며 '인구 30만 명 미만의 도시 50개를 대상으로 5년간 대형 유통점들의 진입을 금지한다'는 정책 공약을 발표했지만, 이는 외국계 대형 유통점들의 시장 접근권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한미FTA와 충돌할 수 있다. 외국계 유통업체들이 이런 법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한미FTA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뒤에 감추고 웃음 띤 얼굴로 손등을 두드리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조치들도 마찬가지다. 한미FTA가 재벌과 대기업들에게 오히려 부를 더 몰아주게 될 것이란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주장은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게 들린다. 한미FTA가 가져올 대자본 우위의 새로운 경제 체제는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내건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나, 기업집단의 내부 거래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의 '사소한' 규제들을 집어삼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유혹과 오해의 말들이 우리들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과연 정치적으로 성숙해졌을까아마 2007년의 대선과 그 이듬해의 총선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스무 살 무렵, 키 크고 세련되고 돈까지 많던 그 선배의 웃음 뒤에 가려진 비릿한 욕망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들 대부분은 거짓을 가려내지 못한 채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지난 몇 년을 쓰리게 곱씹어야 했던 '정치의 상처'다.
어김없이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두 번의 선거를 앞에 두고 있는 오늘, 우리는 과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해졌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물론 무엇이 더 올바른 선택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번처럼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선택은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도 사랑만큼이나 크고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끝으로 곧 눈물 겨운 첫사랑의 아픔을 겪게 될 스무 살 무렵의 청년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어느 순간 정치가 사랑보다 절실할 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첫사랑의 상처가 못 견디게 아프더라도 너무 쉽게 정치를 포기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첫사랑의 상처와 달리 정치가 주는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잘 아물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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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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