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 말하겠죠? "변한게 하나도 없네"
황주찬
할머니 : 방이 따뜻하고 좋아요.
나 : 네. 방값도 싸고... 좋네요.할머니 : 근디, 방에서 청소하는 이는 아들이요?나 : 예? (잠시 어색한 침묵.... 파란 하늘을 봅니다. 휴~)
17년 전 일입니다. 군대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습니다. 새학기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에도 대학 등록금이 미친 듯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지요. 만만치 않은 대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활비를 줄이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많은 학생이 선택한 방법은 자취방을 공동으로 얻는 일이었습니다. 후배와 동거하기로 하고 함께 적당한 자취방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며칠간 발품 판 덕분에 겨우 적당한 가격대 방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이 겨우 몸 누일 정도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 방도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런 곳조차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요. 다행히 졸업하는 선배가 조용히 이 집을 소개해줬습니다.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하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 장점은 학교와 매우 가깝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게으름이 통하는 위치입니다.
후배와 간단히 끼니 때울 도구를 챙겨 그곳에 짐을 풀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지워야겠지요. 가져간 걸레를 수돗가에서 빨고 있었습니다. 마침 주인 할머니가 부지런을 떨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잰걸음으로 다가옵니다.
"같이 사는 이가 아들이오?"... 복학생의 굴욕 그리고 넌지시 제게 묻습니다. 방안에서 열심히 걸레질하고 있는 후배를 고개 돌려 쳐다보더니 아들 같은데 참 똘망똘망하게 생겼답니다. 그 소리에 잠시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럼, 저는 후배의 아버지가 되는 건가요? 물론, 후배 얼굴이 젊어 보이는 건 인정합니다.
체구도 작아서 누가 보면 대학생으로 보지 않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얼굴 탱탱한 제가 어디를 봐서 후배 아버지로 보였을까요? 할머니는 정수리쪽 머리가 약간 부족한(?) 저의 뒷모습을 보고 아버지로 판단한 겁니다. 그 소리를 들은 후배가 배를 잡고 뒹굽니다.
저는 자취방 할머니에게 또렷이 말했습니다. "할머니, 아들이 아니고 후배예요. 그것도 2년 후배." 상황을 이내 알아차린 할머니가 미안한 듯 말합니다.
"후배요? 나는 아들인 줄 알았소. 그런데 저 사람 참 어려 보이네."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조용히 할머니가 사라집니다.
그 뒤, 수돗가에 앉아 한참을 파란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아! '동안후배'와 자취하면 이런 상황에 부딪치는군요. 할머니의 오해를 받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제 머리카락은 정수리부터 빠지고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미 많이 빠진 상태입니다.
바람 불면 하늘하늘~ 제대하니 다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