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심리치유 센터 와락와락의 풍경
오형일
모두가 끝났다고 부둥켜 울 때, 바로 그 지점에 늘 새로운 시작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복직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2011년 가을 우연히 <나는 꼼수다>를 듣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떠올리게 됐다. 이 분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 지부의 투쟁이 서울 여의도 KBS 주변에서 한참이었던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77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언젠가 거리 선전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MBC PD수첩에서 <쌍용자동차 운명의 10일> 파업 농성 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나는 해고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나는,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권력과 자본의 폭력 앞에 무참하게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서 갑자기 의식 이면으로 떠올랐다.
고백하자면, 주진우 기자의 호소가 있기 전까지 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가 나의 문제라고 애써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77일간의 파업 기간 수많은 연대와 지지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향했고, 나는 그 연대의 힘으로 파업은 승리로 끝났다고 믿고 싶었다. 그게 사실이 아님을, 사회적 연대와 관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평택에서는 끝나지 않은 싸움이 지속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눈도 귀도 닫고 싶었다는 게 어쩌면 더 정확한 나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관심은 작은 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복직 후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었고, 또 다른 관계가 시작되었으며, 그 새로운 국면에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였다는 기억, 경험, 정체성은 한편에 묻고 싶었다.
나의 외면, 나의 무관심과 상관없이 파업이 끝나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나빠졌다. 이를 증명하듯, 가끔 이름 모를 노동자와 그 가족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나의 지독한 무관심은 이 죽음조차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 중 일부로 치부했다. 이것은 내게 타자의 죽음에 대한 둔감함의 문제를 넘어선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명제를 그 누구보다 공감하는 해고노동자였던 내가, 또 다른 나의 죽음에 대한 둔감함이었다. 무관심이었다. 작년 가을 주진우 기자의 이야기를 <나꼼수>를 통해 듣다 이 불편한 진실에 많이 미안했다. 여전히 거리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와락을 찾아갔다. 작은 힘이지만 함께 하고 싶었다. 예전에 내가 해고되었던 그 시점, 수많은 애정과 연대의 마음, 인간의 따뜻한 마음들이 나와 우리 KBS계약직지부를 와락 품었던 것처럼….
매주 토요일 와락을 찾아간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와락을 통해 많은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들을 알게 되었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적인 진압의 기억에 피폭된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 아픔, 외로움은 몇 자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선다. 와락은 그 표현할 수 없는 침묵과 분노의 역사를 품고, 또 다른 오늘의 희망을 일구는 곳,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 실천의 공간인 것 같았다.
이 공간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만을 위한 공간을 원하든 원하지 않던 넘어섰다. 이 땅에 권력과 자본의 폭력에 아팠던 기억을 가진 모든 사람이 서로 "괜찮다"며 토닥거리는 공동체, 한때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언젠가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누군가가 오늘의 해고 노동자 가족들과 연대하도록 매개하는 공간, 인간, 사랑, 연대, 웃음의 힘으로 권력과 자본의 폭력을 가볍게 넘어서는 공간. 내게 와락은 그런 공간이었다.
2012년 서울 희망광장 봄은 오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