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은땅 너른땅의 푸나무>
지성사
봄인가 싶게 꽃을 주제로 한 여러 축제 소식이 전해진다. 수많은 봄꽃 축제 중 으뜸은 아마도 진해와 군산, 하동(화개장터), 제주도 등 우리나라 38군데에서 열린다는 벚꽃 축제가 아닐까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해 벚꽃 축제(4.1~4.10)와 제주도 왕벚꽃 축제(4.6~4.8) 등 여러 지역의 벚꽃 축제 소식들이 속속 들려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벚꽃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 인근에선 벚꽃으로 꽤나 유명한 금산사(전북 김제) 가까이에서 나고 자랐고 벚꽃 잎이 분분 날리는 봄마다 소풍을 가곤 했던지라 벚꽃은 자연스럽게 아련한 추억 속 꽃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워낙 흔하게 볼 수 있는 봄꽃인데다, 축제 또한 많은지라 아마도 나처럼 벚꽃이 자연스럽게 추억에 스며든 사람들이 많으리라.
그런데 우리만의 벚꽃 축제는 아닌 모양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중심가에서도 해마다 4월에 왕벚꽃 축제(Cherry blossom festival)가 열린다니 말이다. 게다가 중간고사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 학생들의 봄방학과 맞물려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니 미국 사람들에게도 벚꽃은 나름대로 특별하게 스며들 법 하다.
워싱턴 DC에서 벌어지는 벚꽃축제는 우리나라와도 관계가 있다. 축제의 중심에선 나무가 바로 왕벚나무이기 때문이다. 코벨의 <한국문화탐구>에 이 나무의 역삿가 잘 설명되어 있다. 1912년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미국과 친선을 도모한다며 미국 워싱턴DC에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선물했다. 일본 아라가와 강변에서 수집한 이 벚나무들은 미국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벌레 피해를 받아 모두 죽었다. 몇 년 후 일본 도쿄시에서는 죽은 벚나무를 대신하여 새로운 품종의 벚나무를 다시 보냈는데 그 나무들의 모본(母本)이 바로 우리나라 제주도산 왕벚나무나무였다. 이는 최근 여러 식물분류학자들의 연구로 확인된 사실이다.워싱턴 DC의 왕벚꽃, 사쿠라로 불리는 '씁쓸함'언젠가 누군가에게 미국에서도 해마다 벚꽃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들었지만 그냥 흘려듣고 말았다. 그런데 <솟은땅 너른땅의 푸나무>(지성사 펴냄)의 저자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처럼 우리 것에 대한 주체를 명확하게 하지 못해 제 이름을 잃게 된 것이다'라 씁쓸해 하며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어 좀 더 각별하게 읽었다.
일본이 미국에 친선의 증표로 보낸 제주도산 왕벚나무가 늘어선 워싱턴DC 주변의 포토맥 강변길은 그리하여 한때 '일본벚꽃거리'로 불린다. 하지만 '동양벚꽃거리'로 바뀌게 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에 유학하던 1920년대 중반에 우리의 벚꽃이니 '한국벚꽃거리'로 바꿔 달라고 미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것을 훗날 미국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의 이런 조치에 일본은 분개한다. 그리하여 유명한 식물학자들을 동원해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내 자신들의 벚꽃임을 증명하고자 일본 전 지역을 들쑤신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랬음에도 워싱턴DC의 우리 왕벚꽃들이 일본 벚꽃인 '사쿠라'로 불리고 있으니 씁쓸할 밖에.
그런데 여기까지 쓰는 동안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는 것을 알고 한동안 마음속에서 막연한 거리감을 뒀던 때가 생각난다. 그런데 나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왕벚나무를 일본의 국화(國花)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일본은 국화가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져 있을 뿐이다'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솟은땅 너른땅의 푸나무>(지성사 펴냄)는 십수 년째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식물 관련 강의 등을 해오고 있는 한 식물분류학자가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땅의 풀과 나무 100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제목 중 '푸나무'는 특정 나무가 아닌 풀과 나무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 지방에 따라 '갈잎나무, 새나무, 잡목이나 잡풀을 베어서 말린 땔나무 따위를 통털어 말하는 풋나무를 푸나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목차를 통해 만나는 식물들은 100종류다. 그런데 이 100종류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지 않고 주인공 나무와 거의 비슷해 헛갈리기 쉽거나 일반인들이 실제로 많이 혼동하는 것, 주인공 나무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푸나무 800여 종을 아울러 소개하는지라 이 책 한권으로 만나는 식물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설명만으로 그치지 않고 눈으로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까지 풍성하게 넣고 있어서 여간 유용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가 그간 구별이 쉽지 않아 찍기만 하고 정리를 하지 않고 미뤄두고 있던 몇 가지 식물들 분류도 해보고, 선제비꽃과 왕제비꽃, 큰졸방제비꽃처럼 말로만 듣던 식물들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참고로 선제비꽃과 왕제비꽃은 자생지와 개체수 감소로 멸종위기 야생식물 2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으며, 이 종류들은 울릉도에 자생하는 큰졸방제비꽃과 함께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종 4~5등급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식물분류학자란 장점이 돋보이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땅의 풀과 나무들의 생태적 특성과 학명, 이름에 얽힌 이야기나 지방에 따라 달리 불리는 이름, 자생지,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헷갈리기 쉬운 식물과의 차이점과 구별법 등 주인공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