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비릉 앞의 파사탑 비각
정만진
수로왕비릉에는 호석이 필요 없다파사탑은 허황옥의 분신(分身)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지금 수로왕비릉 앞에 놓인 파사탑을 보면서 '제 자리를 찾았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인도→ 호계사→ 수로왕비릉, 이것이 파사탑의 인생 경로이다. 인도에서 건너와 처음에는 김해 시내 중심가의 호계사에 놓였는데, 그 절이 없어지면서 1873년(고종 10)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거의 1,700년만에 허황옥의 품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허황옥을 지키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파사탑,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역사와 전설의 탑이다.
파사탑에서 10m 정도 계단을 오르면 수로왕비릉에 닿는다. 앞으로 경사진 구릉에 놓인 수로왕비릉은, 잔디밭에 앉아 말없이 김해 시내를 굽어살피고 있는 고운 할머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녀의 등 뒤로는 소나무들이 동쪽, 서쪽, 북쪽의 삼면을 겹겹으로 나란히 서서 거칠게 불어닥치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가로 16m, 높이 5m 정도인 수로왕비릉은 주위에 호석(護石)을 두르지 않고 있다. 호석은, 경주 금산원(金山原)의 김유신묘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무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묘 하단을 사방으로 둘러가며 큰 돌로 받쳐놓는 시설이다. 둘레에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은 채 맨 얼굴로 앉아 있는 수로왕비릉은 '파사탑이 있는데 호석이 왜 또 필요해?'하고 반문하는 듯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므로 왕비릉 앞에서 너무 지나치게 장식이 없어 쓸쓸하고 가난해 보인다는 기우는 금물이다. 묘 앞에 탑이 서 있는데, 그 무슨 황당한 오해인가. 탑은 불교에서 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법당보다도 먼저 생긴 것이니, 뒷날 파사탑이 옮겨올 수로왕비릉에 호석 따위를 만들지 않은 금관가야인들의 처사는 아주 현명한 조치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