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교육, 민주주의·정의·평등의 가치가 중요"

핀란드 교육개혁의 주인공 에르끼 아호 강연회

등록 2012.03.23 11:29수정 2012.03.23 11:32
0
원고료로 응원
핀란드 교육개혁의 선봉장이었던, 에르끼 아호 (Erkki Aho·75)의 강연회가 3월 21일 조계사 전통예술공연장에서 열렸습니다. 에르끼 아호씨는 1972년부터 1991년까지 핀란드 국가교육청장으로 일하며 협력 지향적 교육이라 알려진 현 핀란드 교육체제의 초석을 닦으신 분입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정책총괄 보좌관인 안승문씨의 사회로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 선생님이 존중 받는 학교'라는 제목의 이번 강연회는 1부 핀란드 교육개혁의 역사적 배경 - '9년 통합교육 체제(Comprehensive Education)' 형성 배경, 2부 필란드 교육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구성됐습니다.

에르끼 아호 전 핀란드 국가교육청장은 이번 방한의 이유를 PISA 국제학력 시험에서 공동 상위권에 속한 한국과 핀란드의 '경쟁'이 아닌 '협력'을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핀란드 교육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두 번에 걸친 교육 변화의 변곡점, 농업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의 진입이 본격화된 시기의 1968년 교육개혁과 탈산업화와 지식 정보 사회로 전환 되던 1990년에 대한 회상을 시작으로 강연회가 시작됐습니다. 1990년 초 이루어졌던 교육개혁의 배경은 우리나라 IMF 경제위기 체제와 흡사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1990대 초반, 핀란드도 은행 붕괴 등의 경제위기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혹자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종말이라고도 평했습니다. 어쨌든 이는 사회에 큰 변화를 종용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국가예산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 되었습니다. 이에, 투여 비용은 최소화하고 효율은 극대화 시키자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 연구에 여전히 아낌없는 투자를 했고, 국가 주력 산업으로 전자분야를 육성하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핀란드는 인구 밀도도 낮기 때문에 인적자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까지 교육현장은 고난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관점의 교육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핀란드식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 계획이 성공적이라는 것이 PISA 테스트에서 증명됐습니다."

그는 기존의 교육 체제와 다른 교육을 원했던 배경으로 '경제 환경의 변화' '기술 발달' '이념적 변화(ideological change)'를 꼽았습니다. 또한 다당제 체제의 정치적 풍토도 다양한 정치적 이해를 적절히 조화시켜 협약을 이끌어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했습니다. 그는 핀란드를 '사회계약 사회'라 부른다며 운을 뗐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들이 한데 모여 토론을 통해 사회 주요 쟁점을 결정하는 풍토가 교육개혁을 가능케 한 자양분이었습니다. 농노 해방의 평등, 자본주의의 효율성,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의 연대의 가치가 한데 어우러져 북유럽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교육개혁이란 단지 구조 개혁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개혁을 시도할 당시, 핀란드 고유의 색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교육 개혁을 가능케 하는 철학적 배경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도출해낸 핀란드 교육의 핵심 철학은 '아동이 교육 과정의 중심'이라는 것이며, 이는 개인별 발달 단계를 존중하는 교육과정과 학습법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의 경우 빨리 노동력을 활용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학습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능력별 균질 집단으로 분리해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라며 "하지만, 능력별 이질 집단 (Mixed-ability Group)이 함께 공부했을 때 성취도가 더 높았습니다"라고 핀란드 교육 연구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종합학교 (Comprehensive School)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지 않았던 개혁 초기 시절, 학교 체제를 북쪽부터 서서히 확대 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관찰해 보니 능력별 통합 교육을 하는 북쪽 학교가 남쪽 문법학교(Grammar School) 보다 성취도가 더 높았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동기를 불어 넣어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증명됐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으며, 모든 아이들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 능력 계발을 최적화하기 위해 균등한 기회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교육체제는 사회적 제약을 과감히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호 전 교육청장은 핀란드 교육개혁 과정의 특기할만한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교육과정 개편 및 전반적인 개혁 과정에서, 교사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또한, 배움과 돌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교사들에게 적절한 안정감 (peace)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능력별 이질 집단 학습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연구중심학교(Research-oriented School)로 학교 기능을 변모시켰습니다. 또한 교사들이 교실 내 상황을 실제적으로 분석하는 등의 연구자에 상응하는 책무를 편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학교 간 비교를 목적으로 한 외부 평가는 없습니다. 이유는 외부평가가 존재한다면 교사가 배움과 돌봄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각종 성취도 시험도 없앴는데 이는 아이들 간 실력을 비교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2부 질의 응답 시간에는, 핀란드에 교사 평가와 학교 평가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호씨는 "핀란드에는 학교 자체 평가 (School Self Evaluation)는 존재하지만, 경쟁지향적인 교사 평가와 학교 평가는 없으며 나름대로의 자율성 (Autonomy)을 존중 받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안승문 정책 보좌관은 "핀란드에는 다양한 교육과정 계발을 위한 과정이 존재하며, 장학사 제도의 경우 1990년대 중반에 없어졌습니다"라며 "이는 학교와 교사들이 자율성과 책무성을 가지고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 자체 평가가 충분히 활성화 됐기 때문에 장학사의 감독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라고 학교 자율화의 긍정적인 정착이 교육행정, 관리 감독 체계에 미친 변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아호 전 교육청장은 이 모든 교육 개혁의 과정들이 어느 날 갑자기 기존 체제를 전복 시키는 혁명적 발전(Revolutionary Development)이 아닌 점진적·진화적 발전(Evolutionary Development)에 기초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핀란드의 학교 폭력 대처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핀란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신변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회복지사, 간호사, 심리학자 (2~3학교 학교 전담), 담임, 교장 등이 함께 학생 복지 팀 (Student Welfare Team)을 구성해 학생이 처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갑니다"라며 "핀란드에도 따돌림(Bullying)과 폭력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빨리 발견하고 사태가 악화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안승문 서울시 정책 보좌관은 "우리나라 학교 폭력 대처 방안이, 폭력대책위원회 등의 사안 대처 기구인데 비해, 핀란드 체제는 근본적인 원인 근절에 집중한 느낌"이라고 평했습니다. 핀란드의 학교운영위원회에 대한 질문에는 안승문 정책 보좌관이 소상히 답변했습니다.

"학교 운영위원회는 지자체에 따라서 의무적 혹은 자율적으로 구성합니다. 헬싱키를 예를 들자면,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원은 학부모 4명, 학교 교사 대표 1명, 직원 대표 1명, 학생 대표 2명으로 구성됩니다. 오히려 교장 선생님은 위원회 외부 지원 인력입니다. 교사와 교감 선생님은 학교 운영 주체이기 때문에, 학교 현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학교 운영에서 결핍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 위원회는 지자체 선거 때 함께 선출 되며 향후 5년 이내에 부모가 될 사람들도 출마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호 전 국가교육청장은, PISA 국제 학력 평가를 넘어설 것을 주문했습니다.

"우리는 PISA 이후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현 PISA 테스트는 그저, 기계적인 언어력, 수리력, 과학 테스트일 뿐입니다. 이것은 교육의 극히 일부분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자신 능력의 작은 부분에 대해 똑같은 잣대로 평가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이런 단선적인 시험 결과보다는, 창조적, 윤리적, 사회적 가치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현 시대는 더 많은 민주주의, 정의와 평등의 가치가 절실합니다."

또한, 한국의 수많은 개혁에 대한 바램과 경쟁지향적인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교육 개혁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전제로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정치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자들과 정치가, 정책 입안자들의 협력과 소통이 우선시됩니다. 핀란드에서는 이런 협치 과정들이 활성화 되어있는데, 한국에서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또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현재 당면한 사회 변화에 대해서 언제나 열린 마음을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배움과 돌봄이라는 교육의 기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 이상적인 조합입니다. 현 상황이 어려운 상황임을 공감합니다. 하지만 학생들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은 경쟁이 만연한 사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쟁으로 학생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경쟁에는 승자도 있지만 패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은 지나친 경쟁교육 완화에 주력해야 합니다. 더 많은 경쟁보다는, 더 많은 협력과 돌봄 지향하는 쪽으로 교육의 방향이 선회하면 좋겠습니다. 핀란드의 교육 개혁 사례는 경쟁 보다는 협력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것을 극명히 보여줍니다."

이번 강연회는 한국교육계가 직면한 문제점의 실마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기회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자립형 공립 고등학교, 대안학교 등의 학교의 다양화가 아니라, 개인적 소질과 적성을 꽃 피워줄 적합한 교수방법과 교육과정의 다양화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하고 유의미한 방법으로 자신의 지적 호기심과 발달 단계에 맞는 지식을 즐길 권리가 학생들에게 보장되어야 하며, 지식의 단편적인 점검과 선발 지향적인 무의미한 평가에 대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식 협치 모델에 대한 고찰, 민선 지방자치시대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균형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얻는 것이 교육 개혁을 두고 일어나는 모든 이해관계를 종식할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르끼 아호 #방한 강연 #3월 21일 조계사 #안승문 #교육개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5. 5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윤 대통령, 24번째 거부권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윤 대통령, 24번째 거부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