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싸이더스 FNH
5년 전인가, 엄마 돌아가시기 전 난 친정식구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남은 재산도 없이 일찍 혼자되신 엄마. 오빠가 처음에는 모시고 살았지만 새언니와의 갈등이 심해짐에 따라 엄마는 분가를 하셨다. 나중에 몸 거동이 힘들어지면 다시 합친다는 조건이었다. 한동안은 매우 행복해 하셨지만 엄마가 점점 나이 들어감에 따라 슬슬 몸은 아파지고. 이미 떨어져 살아 본 새언니는 합치는 걸 탐탁해하지 않고. 오빠는 오빠대로 난감해하고. 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내가 모시려 해보기도 했지만 장남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엄마의 고집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시절.
늘 여자 편에서 이해하려 하고, 힘든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준다고 큰소리 펑펑 치던 나. 정작 내가 개입이 되니 자꾸 전형적인 시누이 입장이 되려 하는 내 자신이 미워서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힘들면 모시지 않으려 저럴까'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그렇지, 애초부터 모셔야 될 입장이란 걸 각오하고 결혼했으면서' 하는 야속한 맘도 들고. 남동생들도 피하긴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누군가가 떠 맡아야 할, 말 그대로 골치 아픈 짐이었다.
혼자 살면 살았지 사위랑 살기는 부담스럽다는 엄마. 세상이 변했건만 딸 맘도 몰라주고. 속상했다. '엄마 모시기를 다들 피한다고? 그래, 좋다. 엄마만 돌아가셔 봐라. 오빠, 동생 아무도 안 보리라. 다 남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시더니 5개월 후 그만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제 세상천지 우리 4남매 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얼굴 자주 보자'라고 했던 오빠 말을 무시하고 난, 1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다.
'흥, 행여 짐을 맡게 될까봐 부담스러워 피해 다니더니 이제 홀가분들 하시냐? 미안하네요. 엄마 없으면 난 형제들 볼 이유가 없네 그려.'끈 떨어진 연 신세된 형제들... '이젠 내가 돌아가신 엄마다'매몰차게 연락도 안 하고 살다가 엄마의 첫 제삿날이 돌아왔다. 골치 아픈 짐이 없어져서 다들 가벼운 맘으로 잘 살 줄 알았는데 웬걸. 엄마의 빈자리가 꽤 컸던 모양이다. 삼형제들이 다 풀이 죽어 있다. 만날 때마다 엄마 욕을 해대던 올케들도 조용하다.
"누나, 엄마가 해주던 김치만두 어떻게 해? 요즘 만두가 생각나면서 엄마 많이 보고 싶더라.""여보, 엄마한테 그것 좀 배워놓지 그랬어.""전에 만드시는 걸 봤는데… 잘 안되더라구요.""누난 엄마 청국장하는 거 배웠지?""…"오빠나 동생이나 엄마 없이 씩씩하게 잘도 살 것 같더니만 '끈 떨어진 연' 신세인 건 나랑 매 한가지다.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에이그 내 새끼들. 니들 좋아하는 것 실컷 해주고 죽을걸' 하는… 그래, 알았다. 지금부턴, 내가 돌아가신 엄마다.
"내가 해줄게. 다음 주 우리 집에 모여라, 다들."이렇게 시작한 엄마 역할. 이번 오빠 환갑 잔치 같은 이런 모임들이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다섯 번 정도 열린 것 같다. 예전에 엄마가 자식들에게 그랬듯이, 아무런 이해관계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그들만의 먹거리를, 그리고 만남들을 챙기고 있다.
그 많던 술이 동이 났는지 더 가져오란다. 몰래 숨겨뒀던 좋은 와인들을 몽땅 풀었다. 다들 기분 좋게 취해 흥이 났다. '시누이인 내가 왜 다 해야 돼?'란 투정 대신 '아이고 내 새끼들, 많이 먹고 건강하게 오래만 살아다오'란 마음이 드는 건, 내 생각인가 엄마 생각인가.
잔치는 끝났건만 남은 음식이 지천이다. 가는 사람들에게 봉지마다 조금씩 담아서 몇 개씩 안겨주고 배웅을 하고는 집안으로 들어와 거울을 봤다. 거울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돌아가신 엄마였다. '어머! 엄마 흉내 좀 냈더니 점점 돌아가신 엄마 모습으로 내가 변해가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가 그리울 때면 거울을 보면 되니까. 내 새끼들, 가면서 운전하다 졸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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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 좀 냈더니, 거울 속에 돌아가신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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