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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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의 이훤(김수현 분)은 사극에서 보기 드문 로맨틱 군주다. 애인을 기다려주는 사람은 많아도, 죽은 애인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드라마 속 이훤은 그렇게까지 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죽었을 것으로 착각한 애인을 기다려준 것이다. 그렇지만, 애인이 살아 있는 사실을 모르고도 그렇게까지 기다려주었으니, 그는 이제껏 나온 사극 인물 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군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로맨틱 군주가 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조선 전기에 실제로 있었다. 연산군을 내쫓고 제11대 주상(왕의 정식명칭)에 등극한 중종 임금도 <해품달> 이훤을 닮을 기회가 있었다. 물론 상황은 좀 다르지만.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왕후·후궁과의 공식 관계를 제외하고, 조선의 군주들은 원칙상 이성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 왕실에서는 권력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로맨틱 가이가 출현하기 힘들었다. 그럼, 중종은 자기에게 다가온 '이훤을 닮을 기회' 앞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궁에서 내쫓긴 신씨, 그를 그리워한 중종조선에서 반정(성공한 쿠데타)으로 왕이 바뀐 것은 두 번이다. 중종 때와 인조(제16대) 때다. 이방원(태종)과 수양대군(세조)도 쿠데타를 했지만, 이들은 쿠데타 이후의 '합법성 세탁 과정'을 거쳐 몇 년 뒤에 왕이 되었다. 그에 비해 중중과 인조는 쿠데타에 의해 '곧바로' 왕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은 여타의 경우와 구별된다.
똑같이 쿠데타 방식으로 왕이 되기는 했지만, 중종과 인조는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중종은 쿠데타에 수동적으로 참여했지만, 인조는 이를 능동적으로 주도했다. 그래서 쿠데타 이후에 두 사람의 처지는 판이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가 비교적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데 반해, 중종은 오랫동안 쿠데타 주역들에게 끌려다녀야 했다.
중종의 처량한 신세를 반영하는 사건이 중종반정 직후에 발생했다. 연산군을 실각시킨 중종반정은 연산군 12년 9월 2일(1506년 9월 18일) 발생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9월 9일(양력 9월 25일) 중종은 부인 신씨를 출궁시켜야 했다. 신씨가 연산군 시대의 실세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쿠데타 주역들이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다.
궁에서 쫓겨난 신씨는 경복궁 서북쪽 인왕산의 큰 바위에 자신의 치마를 널어놓았다.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남편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중종도 내막을 알고는 그 바위를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고 한다. 그 바위는 치마바위로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