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지난 7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을 찾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야권연대를 만들어내고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면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유성호
공교롭게도 우리의 '근혜공주자가'께서는 이렇게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이 흑주술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옆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설마 우리의 공주자가께서 민주주의의 척살을 기원하지는 않았겠지만, 흑주술이 자행될 때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른 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그 자리에 있기만 했던 민화공주의 입장에서는 지금 그토록 위세가 당당한 '근혜공주자가'가 무척이나 못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MB의 흑주술을 막아내고 그 때문에 질식하는 민주주의를 살려낼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의 야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세간에는 오래 전부터 '연대를 품은 야권'만이 이 흑주술을 이겨낼 유일한 방책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8일 자정을 넘기면서 새벽까지 진행된 야권연대협상은 결국 타결되지 못했다. 이대로 야권은 분열된 채로 총선을 맞이할 것인가? 과연 야권연대의 전설은 실현될 것인가? 정말 1:1 구도를 만들면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고 그 여파로 대선까지 거머쥘까?
지금까지 야권의 행보를 돌아보면 그 전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야권과 야권연대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감동이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본말이 전도된 듯 한 야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야권이 연대를 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고 또 그 여파로 정권을 바꾸는 그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4대강이나 구럼비 같은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궁극적인 목표는 오히려 자기 세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모든 수사와 야권연대협상이 그저 정치공학적인 계산으로만 비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번에 협상이 결렬된 것도 근본적으로 그 때문이 아닐까?
야권연대 협상 시한으로 정해진 3월 8일, 민주당의 한명숙 대표는 강정마을에 도착해서 야권연대의 필요성만 5분 동안 연설하다가 주민들이 폭발을 막기 위해 하루만 더 있다가 가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야권연대 막판 협상을 강정마을에서 할 수는 없었을까?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뭘하려는지 알 수 없다무엇보다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해 선거 초반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이름만 바꾸는 보여주기 쇼였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서는 '근혜공주자가'의 새누리당이 큰 점수를 얻었다. 분칠로만 얼굴에 묻은 얼룩을 감추는 꼼수였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적어도 그런 노력에라도 박수를 보낸 것이다.
그에 비하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야권이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의 틀조차도 이미 낡았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호남당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통합진보당은 무슨 이유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는지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정쟁을 일삼는 세력은 머지않아 도태되고 만다.
세간에 떠도는 이른바 '13년 체제'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87년 체제의 잔상은 새로운 한국사회를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낡았다. 안철수 바람이 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미 감각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야권이 진정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가장 철저하게 자신의 현재 모습을 깨뜨려야만 한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한, 여야 주요 정당의 대표인 '달(우연히도 박근혜, 한명숙, 이정희 모두 여성이다)'들은 자신의 육신을 베어 낼 칼을 품어야만 종국에는 해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야권연대가 성공적으로 성사되고 또 총선에서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눈앞의 자기 잇속만 챙기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정치공학적인 계산에만 열중한다면 총선승리는 승자의 독배가 될지도 모른다. 의회권력을 바꾼 뒤 신속하게 개혁조치들을 취하고 그 성과를 얻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행정권력은 권력말기이기는 해도 MB의 손아귀에 있다. 모든 언론을 동원해 또 모든 국가기관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반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의회다수를 점하고서도 개혁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전례를 떠올려 본다면 단지 국회다수파가 되어 청문회와 국정조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모른다"와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는 증인들과 질문은 하지 않고 호통만 치는 야당의원들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여기저기서 '개혁피로감'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고 야권이 지금과 같은 허약한 리더십을 보인다면 야권에게 권력을 넘겨봤자 별 볼일 없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도 모른다. 의회권력 교체로 어느 정도 MB심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에겐 더 이상 정권심판론이 크게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야권연대와 총선승리는 기나긴 여정의 단지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지금부터 야권은 왜 야권연대를 해야 하고 왜 총선에서 승리해야 하는지, 그렇게 얻은 의회권력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답과 개혁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은 여의도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현장에서 가장 진실 되고 가장 강력한 선거운동을 벌일 수가 있다.
흑주술은 5년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