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구럼비 바위는 내 몸의 장기와 같은 것

"장기기증? 아빠 몸은 혼자만의 몸이 아니야"

등록 2012.03.07 12:41수정 2012.03.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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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장기기증을 한다는 표식이 운전면허증에도 인쇄가 되어있는데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신속한 장기기증이 이루어지도록 면허증 뒤에는 아내와 두 딸의 전화번호도 적혀있다.


사후에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이라? 사실은 나도 무섭다. 죽음 그 자체도 두렵다. 의사인 누이동생은 "장기기증은 찬성하지만 시신기증은 반대한다"며 생난리를 치곤 했다. 그 께름칙함에 잠을 못 이루고는 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2007년 4월 15일 오후 3시 서울에서 홍천 수타사로 가던 중이었다. 양평휴게소에서 유턴해 다시 서울로 오려고 횡단보도로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던 중 순찰차가 차를 세우란다. 세우자마자 면허증 제시하라기 전에 내가 먼저 꺼내줬다. 경찰관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면허증을 받아든 옆의 경찰관이 벌금 없는 스티커를 발부했다. 고마웠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횡단보도 건널 때는 오토바이를 끌고 가라는 말도 덧붙인다. 내가 웃으면서 오토바이가 무거워서 조금 어려울 것 같다니까 경찰관 아저씨도 웃으면서 자기들도 이해는 한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저씨 면허증에 장기기증을 보고 벌금 없는 스티커로 발부 했다는 것. 면허증 뒤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진심임이 느껴졌다고 한다.

 장기기증
장기기증조상연

언젠가 두 딸과 맥주를 한 잔 하는데 딸들의 말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언제 이렇게 철이 들었는지, 내가 잘못 키우지는 않았구나하는 생각과 제 아비보다 낫다는 생각에 그만 울컥했다.

"아빠 면허증 줘봐."
"?"
"아빠 면허증에 장기기증 인쇄되어있지?"
"그런데?"
"아빠는 술하고 담배 좀 줄여야 돼."
"아빠가 너희들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건데 어떻게 줄여?"


"아빠 몸은 아빠 혼자만의 것이 아니야.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아빠가 장기기증은 하기로 한 이상, 아빠 몸은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 나중에 장기기증을 받을 사람들의 몸이기도 한 거야. 알아? 아빠가 술에 절고 담배에 절은 몸을 기증한다고 생각해봐. 기증받는 사람들이 좋겠어? 그리고 나중에라도 너무 몸을 함부로 해서 기증을 못한다고 하면 아빠의 좋은 뜻은 물거품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아빠 몸은 아빠 혼자의 몸이 아닐뿐더러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야."
"..."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조상연

 미륵산에서 내려다 본 한려수도.
미륵산에서 내려다 본 한려수도.조상연

제주 구럼비 바위, 온전하게 물려줘야 할 장기와 같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그렇게 넓다고 할 수는 없다. 통영 앞바다의 한려수도나 제주도의 구럼비 바위는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선물이다. 크지도 않은 국토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딸들의 말대로 내 몸의 장기처럼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폭파를 하고 그 자리에 해군기지를 세우겠다니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우리는 천혜의 경관을 잃어버릴 것이다. 동시에 해군기지 일대는 전쟁이 나면 적들의 공격대상의 1순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내 짧은 식견이지만 상대적으로 '얼씨구 좋다'라며 춤을 출 나라는 바로 오키나와의 군사기지에서 물러나게 된 미국이 아닐까 싶다.

예전과 달리 동서의 대립관계가 완화된 이 시점에 열강대국들의 '극동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많이 약해졌다. 이러한 시점에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세운다? 그것도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물려줘야 할 내 몸의 장기와도 같은, 몇 안 되는 천혜의 경관을 가진 제주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까지 해가면서 해군기지를 세운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조상연

정부는 "아빠 몸은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 나중에 장기기증을 받을 사람들의 몸이기도 한 거야"라고 했던 내 딸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구럼비 바위의 폭파와 해군기지 건설을 다시 한 번 재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다음에라도 꼭 해야만 하겠다면 내가, 내 딸들이, 국민이 알아듣게끔 설명을 하고 설득을 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3월 7일 10시 22분에 송고된 것으로 이 기사가 들어올 당시에는 구럼비 바위에 발파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3월 7일 10시 22분에 송고된 것으로 이 기사가 들어올 당시에는 구럼비 바위에 발파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제주도 #구럼비 바위 #장기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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