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난 보름 후 잿더미 속에서 건진 몇 장 안되는 사진 중 두 장. 불길의 흔적을 지운다고 오릴 수 있는 데까지 오렸지만....
김현자
가난은 참아도, 불타버린 추억은 두고두고 아쉬워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왔고 소방차가 떠난 후 경찰이 현장을 찾아와 조사라는 것을 하고 떠났다. "화재 감식반이 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 무엇 하나 절대 건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그러나 며칠 후 찾아온 경찰은 화재원인을 찾아내 이웃에게 손해배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짓밟았다. 단 몇 분 둘러보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원인불명' 그리고 이젠 집기를 건드려도 된다는 것.
그해 봄 유독 많은 비가 내렸다. 이틀이 멀다고 비가 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손해배상이고 뭐고 까만 잿더미를 파헤쳐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우리 가족의 귀중한 것들을 하나라도 더, 빨리 건져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지난날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척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화재 때문에 극도로 불안해진 아이들. 여기에 더해 어린 시절을 담은 소중한 기록마저 모두 불에 타버린 것이다.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겐 2004년 4월 18일 이전의 기록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끊겨 토막 난 필름처럼 부분 부분만 어쩌다 겨우 있을 뿐이다.
사실 화재 때문에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것들이 담긴 사진이나 이런저런 소중한 기록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돈을 아껴 사거나 소중한 인연들로부터 선물 받아 가지고 있던 천여 권 정도의 책, 청소년기부터 쓰기 시작한 이십 권이 넘는 일기장,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인 2000년 이전 늦은 밤 쓴 원고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잃지 말아야 했을,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가치가 스며있는 것들이다.
이미 9년째로 접어드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화재 후유증 탓에 발작을 일으키곤 한다. 지하철을 타고 30분이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가 밸브 잠근 것을 확인하고자 약속까지 어기고 집으로 급히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다. 볼일을 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조급증 환자처럼 채근하며 집으로 가 밸브가 잠겼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많다. 차를 놓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되돌아와 멀쩡하게 잠긴 밸브를 보고 나왔음에도, 다시 불안해져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통에 하던 일이 어긋나 버린 적도 있다.
봄만 되면 찾아오는 불안...벗어나고 싶다다시 봄이란다. 지난겨울에도 불안은 계속되었다. 1991년 신혼시절 있었던 화재에 이어 9년 전 화재가 모두 봄에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봄이면 불안해진다.
얻은 것도 많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화재 때문에 점점 황폐해져 가는 나를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물건에 집착하던 예전과 달리 한순간 사라져 버리고 마는 사물들은 쌓아두기보다는 좀 더 충분히 느끼고 마음에 스며들게 하자는 것도 화재 덕분이라면 덕이다.
그래도 누군가 소원을 말하라면 '2004년 4월 18일 오후 1시 30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고 부질없는 소원이란 것을 잘 안다.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한 번씩 이 어리석고 부질없는 꿈을 꾸는 이유는 그날의 화재로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재의 후유증에서 이젠 제발 벗어나고 싶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후유증은 순간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툭툭 튀어나와 나와 내 가족을 아프게 한다. 올봄도 두렵다. 견뎌내야만 하는 불안증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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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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