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 4ㆍ11 총선 야권연대를 위한 협상 1차회의'에서 각당 협상 대표인 민주통합당 박선숙 의원(왼쪽)과 통합진보당 장원섭 사무총장이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민주당이 보인 행보는 오락가락 우왕좌왕 그 자체다. 대외적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새시대의 선도그룹처럼 포장하는 데 성공했으나, 실제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선, 민주당은 지지율이 오르자 야권연대 협상을 중단했는데, 이는 스스로의 위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앙차원의 야권연대가 미뤄질수록 지역에서의 반발이 커져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협상파트너인 통합진보당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대 야당과 소수야당이 동일한 무게의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런 결과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이들이 민주당에게 부여해준 '야권의 맏형'이라는 존재의미를 스스로 차 버리는 행위가 되어 버렸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야당들이 힘을 합쳐 이명박 정부의 그늘을 걷어내야 한다는 요구를 등진 채, 산술적인 득표율 계산에만 치중한 결과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의 '어부지리 효과'가 야권연대의 주도자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때, 너무 쉬운 협상 중단은 스스로의 위상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물론 야권연대에 무조건 응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은 없다. 민주당은 물론 다른 어떤 정당도 당당하게 선거의 장에서 유권자에게 심판받을 권리가 있다.
만일 야권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선거에 임하겠다면 그렇게 표명하면 될 일이다. 이미 진보신당 등 소수 야당은 야권연대 없는 독자 경쟁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반MB와 야권연대'를 기치로 활동해 왔고, 최근의 지지율 상승도 야권연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필요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은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에게 야권연대 협상 타결을 위한 긴급회동을 제안하고, 한명숙 총리가 5일 이에 적극 화답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비록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6일로 예정된 협상 테이블은 철저한 이익협상의 장이 아니라 야권연대를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는 선언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떤 정당이라도 자신의 이익과 상황만 내세운다면 국민에게 신뢰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 역시 구태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나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고 있는 공천 잡음은 민주당이 새시대의 정당이 아니라 구시대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만 만들어 냈다. 결국 후보자격을 최종 박탈하기는 했지만,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 선거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사무처장 출신을 공천 경선후보에 올린 것은 위기의 징후였다.
2007년 대선 기간 동안 "평생을 탈 비행기와 KTX를 1년 만에 다 타버렸을 정도"로 이명박 당시 후보와 열정적인 선거운동을 펼쳤던 인물을 서슴없이 공천 경선후보에 올려놓은 것은 총선 승리라는 민주당의 목표가 '이명박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오직 선거승리에만 목을 매고 있다는 메시지와 같았다. 또한 청년비례후보에도 대학시절 색깔론까지 동원했던 후보까지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텃밭이라 하는 호남지역의 최근 모습들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했을 때의 모습에 희망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호남지역의 상징적인 도시인 광주에서 일어난 선거인단 대리등록 의혹과 전직 공무원의 투신자살 사건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이들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줬다. 민주당 역시 구태정치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공천에 대한 잡음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불가피하게 누군가 탈락하게 되는 경쟁 레이스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지만, 민주당이 겉으로 표방한 새로운 가치와 심각하게 배치되는 후보들이 줄줄이 선수로 나서는 것은 이해 못할 결정이다.
물론 이것이 오로지 민주당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총선 승리의 가능성이 가장 높고, 차기 정권교체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당에 온갖 정치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결과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이런 일이 나타났을 때 이를 해결하는 당의 의지다. 겉으로는 새로운 변화, MB와는 다른 세상을 외쳐대면서 속으로는 관행과 현실을 수용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희망을 걸기 어렵다.
똘똘한 유권자의 실천이 필요한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