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 문병호 민주통합당 후보(인천 부평갑)
이정민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91년부터 인천노동법률상담소를 운영, 이후 인천여성노동자회 자문변호사, 인권변호사를 자처하며 법률가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문병호 국회의원 후보. 그랬던 그가 근 30여 년을 인천 부평에서 생활하며 가장 불평부당하게 느꼈던 부평 미군기지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 하나, 부평구민들이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녹지공원화 추진을 위해서였다.
이후 그는 부평 곳곳을 찾아다니며 생생한 민심의 소리를 받든다. 그러기위해 그는 과거 법조인의 분위기를 확 벗어던졌다. 소탈한 이미지, 친근한 인상으로 재래시장과 공장 노동자를 찾아다니며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노동, 인권, 환경, 복지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발품을 팔았던 그는 2004년 드디어 제도권 국회로 입성한다. 이후 문 후보는 초선임에도 불구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정책조정위원장, 보건복지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우수국회의원 6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쥔다. 하지만 이후 탄탄대로 일 것만 같았던 그의 정치 인생이 그대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민심을 향한 초심을 바로 잡고 다시 골목길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이런 결과는 2008년 가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30분에 열리고 있는 인천현안 정책토론회로 이어진다. 김밥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고서 말이다. 결국 이는 시민과의 충직한 소통과 아름다운 연대에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됐고, 문 후보 자서전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세련미는 서울대에서 안 가르치나 보다'"뚝배기보다 장맛이듯이 토종 된장국이나 청국장처럼 구수한, 땅속에서 오래 숨 쉬던 묵은 지처럼 그윽한 그리움으로, 오래오래 우리 주위에서 그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정화해 나가길 바란다."문 후보의 지인인 박철민 작가는 오랫동안 보아왔던 그의 인상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다. 이는 '세련미는 서울대에서 안 가르치나 보다'라고 했던 지인 김동순씨의 말과도 일치했다. 촌스럽고 닳아빠진 모습, 그것 자체가 사람 냄새나고 정겨움을 더해주는 그만의 품성이었다.
이런 인상덕분인지 그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노동인권에 온힘을 기울인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도 운동권 학생, 경제ㆍ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노동 상담소 개설, 무료법률상담, 시국사건 변호 등을 해주며 대내외적으로 인권노동변호사로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러한 내용은 함께 근무를 했던 법무법인 '위민'의 이동식 사무장의 말에도 그대로 묻어나 있다.
"그는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는 용기가 있고, 강자보다는 늘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기를 좋아하는 정의감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으며,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책임을 질 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늘 약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소탈함과 소박함의 평범한 일상을 즐거워했다."팔 걷어붙이고, 땀 흘려 일하는 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