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 교사들은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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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가 끝나고 7월부터 출근했는데, 이때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달마다 독서행사를 해 교육청 누리집에 사진을 올리고 작품을 보내달라고 했다. 병설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학년마다 결과물을 내라는 게 미안했다. 외부 행사도 많아 5, 6학년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항상 나가는 아이들이 나가게 돼 수업 결손도 많아졌다. 여러 행사가 겹치는 날에는 반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3~4명 밖에 안되는 날도 있었다.
수업 끝나고 공문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활동하다 '내일은 어떻게 해봐야지'라고 생각한 것은 모두 잊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교무실에 모여 같이 일을 해도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수업시간에 일 하나라도 해치워놓을까'라는 유혹도 생겼다. 그래도 수업시간에는 절대 일을 안 하기로 맘을 굳게 먹었던지라 그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아이들에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방학 때도 일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학교는 방학 근무 일수도 많지만, 나가서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학교에 이렇게 일이 많은 것은 학교 규모에 관계없이 행정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학교에 요구하는 일의 종류가 똑같기 때문이다. 이 일들의 성격이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교를 대상으로 알아보고 행사를 치르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그래서 학교가 크면 한 가지 일을 알리고 해결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작은 학교는 인원수가 적어서 그 시간이 짧다는 차이만 있다. 작은 학교 교사는 큰 학교 여러 명이 할 일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는 작아도 가짓수 자체가 많고, 그 일들이 연관돼 있지 않아 한 가지 일이 떨어질 때마다 새롭게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공평하게 일을 나누기 위해 해마다 업무가 달라지는데 이 때문에 늘 일이 서툴다. 그러니 공문 한 번 쓸 때마다 다른 사람이 쓴 것이나 전에 있던 것 여러 번 기웃거려 작성하고, 예산을 작성할 때는 인증서가 들어 있는 USB를 들고 행정실에 가 도와달라고 하는 게 더 빠르다.
그 해 내가 한 일은 인천의 큰 학교에서 10여 년 동안 했던 일보다 훨씬 많게 느껴졌다. 도시에서 오고, 아이가 어리다고 봐줘서 학교에서 일을 가장 적게 했는데도 그랬다. 이후 작은 학교가 좋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선뜻 대답해주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우리 학교 아이들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큰 학교에서는 일은 일일 뿐이라 일과 아이들이 연결된 느낌을 받기 힘들다.
학생 손 빌려 학교관리 하는 일 생길 수도2012년 현재, 요즘은 학교 업무가 더 많이 생겼다. 처음 학교 업무가 전산화될 때는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전산화가 들어올 때는 늘 간소화와 업무 효율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자 하나 틀려도 다시 출력하고, 고치기 쉽다고 더 완벽한 걸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메신저로는 수시로 협조 요청이나 긴급 조사 내용들이 들어온다.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는 수업시간에 보내 놓아야 오후에 일 처리가 되기 때문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