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 '러브레터'를 보시길.
러브레터(1995)
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 <러브레터>(1995)를 보면 된다. 배경은 일본 최북단 훗카이도(북해도)다. 도내 전역이 폭설 지대로 가장 추운 달 평균 기온은 영하 8도쯤 된다.
영화에선 두 여자 주인공(사실은 1인 2역)이 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연스럽다. 심지어 한 주인공은 모자나 장갑도 끼지 않고 겨울용 외투만 걸친 채 탄다. 영화에서 과장해서 표현했다기보다는 평상시 모습이 반영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덴마크나 스웨덴, 일본처럼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들의 겨울은 남다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겨울이 더 길고 혹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도심에선 자동차와 전차, 소가 끄는 수레, 인력거와 자전거, 사람이 뒤엉켜 다녔고, 도심을 벗어나면 죄다 비포장길이었다.
특히 겨울이 되면 큰 눈이 내려 길이 끊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겨울만 되면 신문에 단골로 실린 제목이 '폭설'과 '교통 두절'이었다.
"지난 16일 오후 9시반경부터 함박같이 퍼붓는 눈은 익일 아침까지 약 1척1촌 가량의 적설로 순창지방 10여년 이래의 대설이 쌓이게 되어 자전거 마차 등은 물론 자동차 각선까지 불통되는 구세말의 분망한 지금에 여간한 곤란이 아니라 한다." - <동아일보>(1933년 1월 19일)경성에선 눈을 치우는 기계를 우선 전차길에 투입했다. 눈을 치워 길을 낸 만큼 전차가 전진했고, 다시 기계가 길을 치우면 전차가 나아갔다. 속도는 더뎠다. 그렇게 겨우 전차 한 대가 운행을 시작하면 나머지 전차는 대기상태였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었다. 눈이 녹을 때까지 줄곧 대기상태. 지금이라면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얼마인지 알리느라 언론마다 법석을 떨었겠지만 당시 보도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출근길을 가로막은 자연재해를 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워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별안간에 쌓인 눈인 까닭에 큰길에도 눈을 쓸어버릴 새가 없어 큰길에도 통행하는 우마차는 바퀴가 빠지고 행인은 발목까지 눈에 묻히어 모두 헤엄을 치는 모양으로 눈 속을 헤매어 가는 것은 장관이었으며 길모퉁이마다 치워도 있고 눈장난을 하는 아해들은 눈덩이를 굴리어 눈사람을 만들어 세운 곳도 많이 있어 참으로 기쁜 겨울에 쌓인 기분을 일으키었더라." - <동아일보>(1922년 1월 10일)이와 같은 태도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특별히 인명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시선은 공통으로 발견된다. 오히려 폭설을 반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 이유는 당시가 농경사회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큰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게 속설이었다. 대부분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던 당시, 큰 눈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5% 정도에 불과한 요즘(2011년말 기준 296만 5천명) 큰 눈이 반가운 이들보다는 불편한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큰 눈이 내리면 이로 인한 경제피해가 얼마니 하면서 언론이 난리를 피우는 건 사람들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 테고.
당시에 자전거를 많이 탄 건 경제상황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너무 비쌌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자전거가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욕심 부려서 살 만했다.
기름값이 갑자기 뛰거나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 아니면 정부도 굳이 자전거를 타라 마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차도에서 특별히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았고, 사고가 나더라도 자동차편을 들었다. 그러니 경제형편이 나아지면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은 오토바이로 옮겨 탔고, 다시 자동차로 갈아탔다. 1970년대를 전후해 정부가 자동차 위주 정책을 펴면서 이런 경향은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이제 생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귀한 존재가 됐다. 주로 레저용으로 자전거를 타는 상황이니 겨울철에 자전거를 보기가 힘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고 꽤 살 만한 나라들인 일본이나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겨울에도 자전거를 많이 타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겨울에 춥고 빙판길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그 사람들도 잘 알 테고.
해답은 옆 나라 중국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세계 자전거의 절반이 있었다는 중국에선 갈수록 자전거가 줄어든다. 사람들이 점차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타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타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은가.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선 자전거 여가인구가 점점 늘면서 전체 자전거 이용인구가 는다는 게 차이일 것이다. 자전거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차이는 여기에 있다. 이들 나라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자전거를 탄다.
덴마크에선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네덜란드에선 시장이 자전거를 타고 주례를 보러 간다. 그래도 자연스러운 건 자전거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겨울에 자전거가 '확' 줄어드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는 휴가철이나 휴일에 가끔씩 타는 놀이수단일 뿐이다. 주로 타는 곳도 강변이나 산. 헬스클럽의 야외버전인 셈이다. 헬스클럽 자전거가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문제와는 별로 상관없듯이 여가용 자전거 또한 마찬가지다.
여가용 자전거가 생활자전거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여가를 즐기기 위해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행렬을 보면 다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생활자전거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 여가자전거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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