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전과의 합방을 거부한 채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는 훤을 여성 시청자들은 응원할 수밖에 없다.
MBC
왕을 비롯한 대소신료들과 왕실 사람들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왕과 중전의 합방에만 매달리는 것도 사극이기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기존 현대극에서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수록 주인공은 열 일 제쳐두고 오직 사랑 하나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주변인물들은 그 사랑의 동조자 혹은 장애물로서만 기능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은 "실장님이 일은 언제 하고 만날 사랑타령이냐?"며 극의 떨어지는 현실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사극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용납된다. 전제 국가에서 왕이 아들을 낳아 후사를 잇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은 칠거지악 중 하나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명분이 되던 시대였다. 하물며 왕이 아닌가. 그렇기에 영의정을 비롯한 대소신료들과 대왕대비 등의 왕실 웃전들이 각자의 본분을 제쳐두고 오로지 합방에만 매달리며 그것에 방해가 되는 월(한가인 분)을 괴롭히는 대목이 이상하지 않다.
월을 향한 훤의 사랑, 그리고 정조 관념은 <해품달>의 로맨스 기능을 극대화하는 장치이며 여성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최고의 장점이다. 왕의 성관계는 개인의 성욕을 충족시키고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본능을 넘어선, 국가의 안녕과 체제의 존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대사다. 그렇기에 중전과의 합방일을 잡는 데 별자리를 보고 액받이 무녀까지 들여 왕의 원기를 보살피는 '수선'을 떠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훤은 끝까지 뚝심 있게 자신의 정절을 지켜낸다. 정적의 딸이자 위선의 가면을 뒤집어쓴 중전(김민서 분)이 미워서 그러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슴 속에 담아둔 첫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전의 귀에 대고 "그대와 그대의 가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니 내 마음까지는 바라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훤을 보며 넘어가지 않을 여성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이 그렇게 말하는데 말이다.
로맨스 드라마로서의 가능성까지 연 <해품달>백마 탄 왕자님과 캔디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매력적인 소재이나 사골국물처럼 우려낸 하나의 패턴만으로는 그 한계가 뚜렷했다. 불륜과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이란 소스를 뿌려도 좀처럼 그 맛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드라마는 변하기 시작했다. 청순가련형에서 벗어나 숫제 남자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드라마(<시크릿 가든>)가 나오는가 하면, 아예 선악이 모호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로열 패밀리>)도 그려졌다.
그리고 <해품달>이 등장했다. 식상하고 개연성 떨어지며 막장스러웠던 여러 장치와 캐릭터에 사극이란 옷을 입혀 한결 자연스러워 보이게 했다. 왕족과 양반들의 권력쟁투가 이처럼 로맨스에 딱 어울리는 보조 장치로 쓰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해품달>은 사극의 새 가능성만 연 것이 아니다. 로맨스 드라마의 새 가능성 또한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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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중전이 잤소?"...왜 그리 집착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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