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상이 망치로 메질하여 만든 못 칼.
송성영
사실 녀석이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지난해 가을, 큰아이 인효가 다니고 있는 풀무고등학교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습니다. 대안학교 중에서 비교적 경제적인 부담이 덜하고 또 대학 진학을 위해 죽어라 공부시키지 않는 풀무고등학교였지만 경쟁률이 높은 편입니다.
입학자격 중에 학업 성적과 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인상이는 큰아이 인효에 비해 말솜씨는 물론이고 학업 성적이 한참 뒤쳐집니다. 풀무고등학교에 원서를 접수할 무렵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너 성적은 몇 프로에 속한다냐?""내 친구는 70%라는디, 나는 40%래~."녀석이 자랑스러워 하는 성적은 풀무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큰아이 인효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효보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농사일도 썩 잘 거들어주는 편입니다. 거기다가 주말이 되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정도로 친구들과 아주 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으로 이사와 중학교 2학년으로 전학 온 첫날, 처음 대면하는 1, 2학년 아이들과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경쟁이 뭔지도 잘 모르는 녀석의 나름 착한 심성 하나만을 믿고 경쟁 치열한 풀무고등학교에 보내고자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로서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이지요.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시키지 않겠다고 풀무고등학교를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경쟁적으로 입시 명문 고등학교를 보내려 하는 부모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아내와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편하게 생각하자.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까?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면 밤늦게까지 입시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자신 있어? 니 생각은 어뗘?""아빠 생각은?""니가 대학을 가기 위해 다른 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하겠다면 일반학교를 가도 상관없어.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다고 보는디. 니가 하고 싶은 게 목공이었으니께, 집에다가 목공실 차려놓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디."녀석이 풀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풀무고등학교의 목공실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부모인 나 역시, 본래 손재주가 있었던 녀석이었기에 녀석의 바람대로 대학입시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농사일을 배워가면서 목공 기술을 연마했으면 싶었습니다. 큰아이를 풀무고등학교에 보낸 것 역시 대학입시를 강요하지 않는 풀무고등학교를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목공도 배우고 싶지만 먼저 울진에 사는 아저씨한티 칼 만드는 거 배우고 싶어.""그려? 그것도 좋지? 아빠는 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대학 따위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봐. 인효 엄마 생각은 어뗘?""그래, 그래도 좋지. 아빠 말대로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대학 가고 싶으면 검정고시 보면 되고."아내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과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려, 엄마 말대로 그렇게 허자. 고등학교에 가서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는 것보담 집에서 부지런히 책 읽어가며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대학이 꼭 필요하다 싶을 때 검정고시 봐도 늦지 않어. 지금 당장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오로지 대학 공부만 해도 상관없고." "칼 만드는 것 배우면서 검정고시 보면 좋겠어.""그렇다고 집에서 늘어지게 놀기만 하면 안 돼.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돼.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전통칼, 조각, 그림, 목공, 여행... 고등학교에선 꿈도 못 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