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왕족발집 내부 전경. 식당 벽 곳곳에는 20년전 그가 왕성하게 씨름했던 모습들의 기사가 가득 붙어 있다.
이정민
- 내부 인테리어가 특별하다. 씨름 선수 시절의 인터뷰 기사가 즐비하다. 각별하게 이렇게 붙여 놓은 다른 이유는. "20년 전 씨름 기사들이에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나도 한때는 이렇게 잘 나갔다', '나도 알고 보면 열정적인 프로선수였다' 등등. 즐거웠던 사연, 맘 아팠던 시절들을 돌아보는 하나의 추억영화죠. 기다리는 손님들 보면서 재밌어 하시기도 하고요."
- 혹시 팬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게 두려운 건 아닌가."절대 아닙니다. 성격 자체가 그래요. 20대 전성기 시절도 그러했지만 나를 안 알아준다고 서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알아봐 주는 게 창피할 정도였죠. 나름 쑥스러움을 잘 탔거든요. 오히려 숨어 다닐 정도였어요. 왜냐고요? 제가 그렇게 유명한 줄 몰랐었거든요."
- 요즘 건강관리를 따로 하나."해야죠. '자식이 용돈 드릴 능력되자 부모는 돌아가신다'라는 말이 있어서 부모에게 더욱 잘해드리고 있고요. 제 건강 관리는 솔직히 잘 못하고 있죠. 하루에 세 갑씩 피는 담배도 단번에 끊기는 어렵지만 줄여야죠. 예전엔 조기축구도 했지만 운동 그만두면서 많이 아프더라고요. 운동선수는 일반인보다 두세배는 더 아파요. 노화도 일찍 오고요. 운동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죠."
- 나이 마흔을 넘겼다. 이전 생활과 다른 느낌들이 있나. 책임감도 무게감도 많이 더해질 텐데."정말 그런 게 있어요. 요즘 느끼는 거지만 젊어서 버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걸 절감합니다. 또한 만병의 원인이 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젊었을 때 포부나 야망은 그때 뿐이더라고요. 성공 패턴에 따라 사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한창 때는 한 방을 노린다는 생각보다 평소 준비하지 않았던 제 모습이 더욱 힘들었어요. 한 마디로 제 인생은 찌그러진 깡통이었어요. 밟아도 더 찌그러질 수 없는 깡통이요. 근데 이게 참 오묘한 게 누군가에게 또 발로 차였을 때 오히려 그때부터 조금씩 펴진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맘을 바꿨습니다. '남에게 돈을 빌리지 말자'는 철칙도 이때 생겼고요. 지금은 짜장면 하나 시켜먹을 때 탕수육 하나 더 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됐지만, 내가 버는 진짜 돈의 의미를 생각하며 잘 쓰는 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 요즘도 씨름계 선후배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지. 혹은 다시 씨름계로 들어가 후배양성이라도 할 의향은 없는지 궁금하다."연락을 가끔 합니다.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고요. 씨름 동문회가 있어 드문드문 여러 지인들을 만납니다. 프로선수 시절, 15명이 한 팀이다 보니 절친도 있잖아요. 그분들과는 서로 연락하면서 가끔 소주 한 잔씩 하며 회포를 풀기도 합니다.
후배양성이요? 당연히 의향은 충분히 있죠. 예전 씨름 그만두고 두 세군데서 지도자 요청이 왔었는데 거절했어요. 제가 그 구단 지도자로 감으로써 기존에 있던 코치나 감독이 그만둬야 되잖아요. 그게 싫었어요. 저 때문에 누군가의 자리가 빼앗기는 걸 차마 수용하기가 어려웠어요. 요즘 다 힘들잖아요. 하지만 그런 상황 아니고 대학팀이나 실업팀에서 요청이 온다면 꼭 하고 싶어요. 씨름 활성화 차원에서라도 말이죠. 그래도 아직 들배지기, 밀어치기, 빗장걸이 등의 기술은 여전합니다.(웃음)"
- 간단히 물어볼께요. 박광덕에게 씨름이란?"(잠시 회상에 젖으며)저의 존재감 그 자체입니다. 아마 씨름이 아니었으면 박광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씨름과 박광덕은 삶의 존재를 이어주는 생의 고리인 셈이죠. 지금의 내 모습을 가르쳐 준 것도 씨름이었고, 씨름이 있었기에 박광덕 이름 석 자가 존재할 수 있었죠. 더불어 씨름판에서 람바다를 추지 않았더라면 많은 팬들이 기억해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웃음). 제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곧 씨름입니다."
- 지인들의 사기, 여러 사람들과의 불행한 관계로 인해 많이 힘들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말이 수 억 원이지 그 돈 떼이고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 아픔은 사람까지도 잃어버려야 했다는 겁니다. 이후로는 돈은 절대 빌리지도 않고 신중하게 사람을 대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 말도 쉽게 내뱉지 않고 심사숙고하며 소통하려하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회 수업료 지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라도 긍정해야 지금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겠지요.
이건 여담인데, 최고로 답답한 사람들은 '이민이나 가서 돈이나 벌어야지'하는 분들이에요. 그게 다 방송 탓이지요. 프로그램 보면 해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만 소개하다보니 혹 하고 떠나버리는 거죠. 제가 다섯 번 정도 강의에 초청돼 언급했던 말이 '프로'와 '선'이라는 말이었어요.
무얼 하더라도 프로정신으로 하되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본분을 지켜야 한다고. 특히 잘난 체 하는 순간 공든 탑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는 말이죠. 진심이면 반드시 통하고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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