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훔치는 이상옥씨졸업을 앞둔 사은회에서
양태훈
"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지금처럼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중학교나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학교를 다녀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고, 남들처럼 학교를 마친 것만 해도 기분이 무척 좋아요. 다만 아쉬운 건 선생님과 반 학생들이랑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죠."
이씨가 일성여중에 입학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8년, 당시 나이 69세였다. 평소 등산을 즐겨하는 이 씨는 산에서 우연히 일성여중고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산에서 만난 어떤 한 아저씨가 자기 부인이 다닌다며 주부학교를 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제가 그 자리에서 손을 얼른 번쩍 들었죠. 이후 학교 약도랑 전화번호를 받았고, 제가 학교에 원서를 직접 내러 찾아갔어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포기했던 공부, 60년 만에 다시이씨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꽤 잘했단다. 덕분에 담임선생님은 그녀에게 중학교 입학을 권유했으나 집안 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초등학교 때 공부를 무척 좋아했어요. 하지만 제가 5남매의 맏딸이었기 때문에 동생들을 돌봐야 했죠. 당시 저희 집 담벼락 너머로 책보자기가 자주 넘어갔어요. 애들을 돌보라는데 책을 보고 있으니 아버지가 책을 담 너머로 버린 거죠. 초등학교를 졸업할 쯤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고,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졌어요. 중학교에서는 입학금을 나중에 내더라도 오라고 했는데…. 결국 사정상 포기했죠."70에 가까운 나이로 다시 배움에 도전한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상옥씨는 단 한 번도 나이가 문제가 된 적은 없다고 답했다. 그저 즐거움만 가득했다는 말뿐이었다.
"제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하도 좋아서 방실방실 웃고 다녔어요. 매일매일 선생님과 반 학생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말이죠.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하나씩 배워 가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요. 그래서인지 나이로 인한 장벽은 느끼지 못했어요.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히 동질감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죠. 사회와 학교에서의 나이 차이는 참 달라요. 지금 우리 반에 20대 학생이 있는데, 저와 50년 차이가 나는데도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사이가 정말 좋아요. 반에서 모두가 언니, 언니하면서 저한테 얼마나 잘 대해주는지…. 언니 소리를 들으니 저야 늘 좋았죠."한자 실력만큼은 '내가 제일 잘 나가'이씨는 공부에도 편식이 없었다.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한문. 물론 옛날 초등학교 3학년 때 접했던 한자를 세월이 훌쩍 흘러 다시 공부하려니, 처음엔 쓰는 것도 어려워 그림 그리듯 했단다. 하지만 매달 치러지는 학교 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네 과목에서 모두 최고 등급인 '특2급'에 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자 4관왕'인 셈. 현재는 한자 공인인증시험 2급까지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한자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우리 손자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됐어요. 제가 학교에서 한자 자격을 딴 것을 알고 '우리 할머니가 한자를 잘하는 구나' 알고 있죠. 자기가 한자를 잘하는 것도 다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뿌듯했지요.(웃음) 학교에 가서도 할머니 이야기를 자랑한다고 하더라고요."이씨는 한자를 공부하며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정말 크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꾸준히 써왔던 한자 쓰기 노트를 펼쳐 보여주는데, 정갈한 글씨의 한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