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대 졸업생 이유비씨와 이현정씨가 농성장에서 추계대까지 가는 거리에 붙인 '두꺼비' 포스터.
전민성
길 가던 행인들과 주민들은 거리에서 뜻밖의 행위예술을 보게 되어 의아해 하기도 하고 웃음과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방학 보충수업 중 잠시 나왔다가 퍼포먼스를 본 김진규(한성고3) 학생과 이준원(한성고3) 학생은 "(바라보는) 방향이 학교인데, 학교 감시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농성장의 이야기와 퍼포먼스의 의도를 전하자, 김진규군은 "재개발이 외관상 괜찮을지 모르지만, 거주하는 분들을 고려하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퍼포먼스를 지켜본 이준원 학생은 "재개발의 의도가 오래된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 것이지만, 현재 거주자분들과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은 그 분들에게 피해가 되니까, 협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농성장 상가세입자 분들의 문제가 잘 해결이 됐으면 한다"고 소망을 비쳤다.
또, 학원에 가는 길에 퍼포먼스를 본 박시현(10, 미동초3)양은 상가세입자의 사연을 들려주자 "아주머니의 건강이 걱정이 된다"며 "아줌마 (몸은) 괜찮아요?"라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또, 북아현동에서 25년을 살았다는 곽조한(63)씨는 "왜 상가세입자들이 추운 겨울에 세 달 동안 길에서 노숙을 하며 농성을 하도록 만드는 것인지 그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곽씨는 "(조합과 시공사가) 빨리 협상에 나서서, 무리한 조건이 아니라면 협의를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세 달 넘게 노숙농성을 이어 온 이선형씨는 "학생들이 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아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며 "재개발의 부당함을 알리고 도움을 주려는 젊은이들의 선한 행동에 대해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뉴타운 재개발 문제는 영세가옥주나 세입자를 불문하고 서민들이 변두리로 쫒겨나는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학생들의 예술가적 노력이 그러한 실상을 알리고,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평했다.
추계예술대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 북아현뉴타운 재개발지역에서 두 명의 졸업생이 진행한 '학사모를 쓴 사람, 두꺼비를 만나다' 퍼포먼스는 '거주와 생계'라는 삶의 절박한 긴장감이 팽팽한 재개발지역에 '여유있는 심리적 소통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있고 실효성이있는 예술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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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사모를 쓴 사람, 두꺼비를 만나다' 퍼포먼스 인터뷰 퍼포먼스를 지켜 본 한성고등학교 김진규 이준원 학생은 '재개발이 꼭 좋은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거주하는 분들의 합의가 우선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전민성
"나는 보았다" |
[기획자 이유비씨의 '기획의도'] '북아현동'. 그곳은 그 근방 대학교의 재학생이라는 장소적 필연성을 넘어서, 나의 젊은 시절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어수룩하고 사람 사는 인심이 좋은 곳. 골목골목 누비다보면 삶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독특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다. 그리고 졸업하는 이때에 북아현동은 서서히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대학생들이 밤새 소주를 들이마시던 곱창집의 아저씨는 그 바람에 땅바닥에서 몇 개월을 지새웠고 북아현동은 곳곳에 바리게이트가 생겼다.
나는, 우리들은 그 장면에 씁쓸해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그냥 보기 싫어서, 등굣길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텐트가까이에만 가면 나의 눈은 스스로 바리게이트를 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졸업하는 오늘에서야 나는 무척 후회가 들었다. 왜 보고도 못 본 척 한 것일까?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는 내가 학사모를 쓸 처지가 될까? 물론 매우 늦은 결심 이지만, 그 '보이는 것'에 대한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단순한 작업이지만 졸업하는 '내가' 보고 있는 퍼포먼스 말이다.
졸업하는 마당에 평소에 관심도 안 가진 주제에 분수 넘게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는 메시지 따위는 넣을 수 없었다. 이 소박한 작업으로 후배들이 힘을 얻어 '쯧쯧, 저 문제에 대해 우리가 더 잘 말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고, 자신들의 예술관과 사회를 보는 눈을 연결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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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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