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돈 버십니까, 돈 벌려고 사십니까?

[홍기빈의 신자유주의와 한국정치경제를 말한다 ④] 복지국가와 '살림살이' 경제를 위하여

등록 2012.02.23 20:23수정 2012.02.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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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신년강좌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신년강좌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권우성

"자본주의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세 가지 제도입니다. 첫번째가 재정 및 공공부문 정책, 두번째가 대기업의 소유·지배 구조, 세번째가 은행 및 금융시스템이에요. 이 세 가지 제도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자본주의의 모델이 결정됩니다. 지금까지는 돈벌이 중심으로 이 제도들이 구성돼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지향을 살림살이 경제 중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돈벌이 중심의 경제를 살림살이 중심의 경제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이 제안한 신자유주의 해결방법이다. 홍 소장은 지난 2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열린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 마지막 수업에서 돈벌이 경제와 살림살이 경제의 차이점과 전자에서 후자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대안적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돈은 살림살이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운영 및 조직원리가 필요하다"며 국가 정책과 대기업 지배구조, 금융 시스템을 그 조직 원리에 맞게끔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벌이 경제' 벗어나 '살림살이' 경제로"

살림살이 원리는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육체적·정신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유형·무형의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다. 이에 반해 돈벌이의 원리는 돈의 증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홍 소장은 "돈벌이의 원리와 살림살이의 원리를 가장 분명하게 구별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집안 살림이 재테크 중심으로 되어있는 집들 많죠? 원래 돈은 수단일 뿐이고 집안 살림이라는 것은 가족 성원들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얼마나 충분히 누릴 수 있느냐로 조직되는 건데 말이죠. 1960년대 한국의 농촌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돈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저 어렸을 때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옛말에 돈 사러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얘기지요. 지금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일 것 같군요."

홍 소장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실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은 수평적 사고지만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수직적 사고"라고 말했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고 그래야만 전혀 새로운 틀 안에서 어떤 종류의 제도가 필요한지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모든 것을 돈벌이, 자산의 가치 증식 위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왔다"며 "대안적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 제도의 조직 및 운영원리는 돈벌이가 아니라 생활 위주의, 살림살이라는 얘기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홍 소장은 '아래로부터의' 살림살이 원리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살림살이 원리는 돈벌이 원리와 마찬가지로 개인, 가족, 지자체, 국가 등 모든 규모에 적용이 가능하다"며 "멀리부터 보지 말고 개인의 삶부터 살림살이 경제를 시작하면 점점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에 한국에도 협동조합 기본법이 생겨서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들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하는 살림살이의 경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즘 대학교 식당은 밥값이 비싼 곳이 많더군요. 학교하고 식당 주인하고 학생들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거지요. 이런 것도 학생들이 모여서 인근 하숙집 아주머니들하고 거래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학교 차원에서 대규모 생활협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우리 삶의 주변부터 바꿔갈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극복... 국가 정책과 대기업 지배구조, 금융 시스템 바꿔야"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특유의 '돈벌이 경제구조'를 '살림살이 경제구조'로 바꾸기 위해 기울여야 할 사회구조적 개혁 요령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홍 소장은 "국가 정책과 대기업 지배구조, 금융 시스템의 세 가지 요소가 자본주의의 형태를 결정한다"며 "이 세 가지를 바꾸면 자본주의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세 가지는 20세기 초 금본위제 시절에는 어느 나라나 비슷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세 가지 제도를 결합시키는 양태가 바뀌었지요. 세 가지 중에 하나만 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가 변하면 나머지 두개가 다 변하게 되어 있거든요. 어떤 나라든 자본주의 형태를 파악하고 싶으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봐야 답이 나온다. 한국 같은 경우, 지금은 주식시장이 주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지만 80년대만 해도 주식시장에서 자금 조달한 기업 아무도 없었거든요. 다 정부 산업정책에 따라서 은행에서 조달했지요. 당시 자본주의와 지금 자본주의의 양태가 다른 이유입니다."

홍 소장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재벌 개혁을 강조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는 재벌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는 기본 구조가 있다"며 "그 구조를 바꾸지 않고 재벌만 괴롭히면 진정한 재벌개혁은 이룰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 사회의 공론장에서 경제민주화 담론이 불거지는 이유는 실제로 그 사회의 경제에서 비대칭적으로 권력이 존재한다는 방증인데 과연 재벌에게만 경제 권력이 비대칭적으로 주어져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홍 소장은 "지금 은행이나 금융시스템에도 문제가 많고 정권 잡은 사람들 몇 명이 30조, 40조짜리 재정계획이나 공공부문 계획 조직하는 것을 그냥 놔두는 것도 위험하다"며 "경제민주화 역시 재벌이나 기업 개혁에만 집중하지 말고 정부정책, 기업 지배구조, 금융 시스템의 세 가지를 한 번에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경제 개혁은 지속적으로 가능한 영역부터 시작해야"

홍 소장은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조건 중 하나로 대안적인 회계시스템도 지목했다. 시장에서 모든 가격이 결정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식 가치 산정법을 넘어서는 회계방식을 고안해야 지금의 체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4대강 보세요.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한 이유는 낙동강에 쌓여있는 모래나 자연 환경의 가치를 계산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모래가 단순 건설 자재보다는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지라도 이걸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는 토론에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다른 회계 방식을 고안하지 못하면 결국은 지금까지 쓰였던 수익성의 계산방식에 당하게 되는 거지요."

홍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수익성의 논리 때문에 개발된 자연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환경 위기, 생태 위기는 이런 종류의 대안적인 회계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기존 수익성의 논리에 기댄 탄소배출권 논리 따위로는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끝으로 "패션은 하루 만에 혁명이 일어날 수 있지만 경제 영역에서는 하루 만에 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며 "경제 변혁은 단절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생활은 우리 아이의 우유가 내일 아침에 집에 배달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며 "우리 애 우유를 구하러갔더니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앞으로 한 달 동안 우유는 없습니다식의 경제 변혁은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연속적이고 무리 없는 경제 변혁의 틀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조금씩 바꿔나갔던 비그포르스의 사고방식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세상과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의 경계를 구분하고 현실의 영역을 아주 정직하게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변화를 꿈꾸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홍기빈 #비그포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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