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묘
이정근
수양의 윤허를 받아내지 못한 대소신료들이 표적을 바꿨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 홀로 있는 상왕이다. 각본에 따른 유도였는지 모른다. 의정부의 원로 정인지가 총대를 멨다. 우의정 정창손, 좌찬성 강맹경, 우찬성 신숙주, 좌참찬 황수신과 함께 몰려왔다.
"지금 상왕의 명위(名位)가 전하와 같아 이를 빌미로 난을 꾀하는 자가 있습니다. 성삼문의 대역이 그렇고 권완과 송현수의 역모가 그렇습니다. 상왕으로 하여금 한양을 떠나 다른 곳에 있게 하소서."금기가 깨졌다. 상왕 폐출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거론한 바 없고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 됐다. 금단의 언어에 족쇄가 풀린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호조판서 이인손, 이조판서 권남, 병조판서 홍달손, 예조판서 박중손, 공조판서 김하, 형조판서 성봉조, 이조참판 박원형, 호조참판 어효첨 등 정난의 주역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다.
"두 임금 사이에 틈을 타서 난을 꾀하는 자가 있으니 청컨대 상왕으로 하여금 피하여 있게 하여 더 이상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소서.""과인과 상왕 사이에는 틈이 없다.""비록 친 부자 사이라도 혐의스러운 일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니 청컨대 신 등의 청을 따라서 종사의 계책을 공고하게 하소서.""중국에 정통고사(正統故事)가 있고 또 내 뜻이 본래 이와 같지 않으니 경들은 다시 말하지 말라."봇물이 터졌으니 시간은 수양 편이다. 서두를 것이 없다. 시간이 가면 해결해 준다. 수양과 신하들의 공방을 지켜보는 상왕과 의덕왕비는 바늘방석이었다. 내보내기 전에 나가고 싶었다. 허나,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종실의 좌장 양녕대군은 왕위 찬탈을 왜 도왔을까?마지막으로 종실의 좌장 양녕대군이 나섰다. 양녕대군 이제는 수양의 아버지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큰 어른이다. 수양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양녕대군이 여러 종친을 거느리고 영의정 정인지, 문무백관과 함께 입궐했다.
"상왕을 궁에서 내보내소서."이제는 수양도 자신의 장자방이 써준 답을 내놓아야 한다. 수순이다. 송현수를 거론한 것은 본론을 꺼내기 위한 변죽이었다. 수양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성삼문이 말하기를 '상왕도 모의에 참여하였다.' 하였으므로 종친과 백관들이 합사하여 '상왕도 죄를 지었으니 도성에 편안히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고 여러 번 청하였으나 과인이 윤허하지 아니하고 처음에 먹은 마음을 지키려 하였다. 허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심이 안정되지 아니하고 계속 잇달아 난(亂)을 선동하는 무리가 그치지 않으니 내가 어찌 사사로운 은의(恩誼)로써 나라의 큰 법을 굽힐 수 있겠는가? 이에 여러 사람의 의논에 따라 상왕을 노산군으로 강봉하여 궁에서 내보내 영월에 거주케 하고 의덕왕대비는 서인으로 강등하여 궁에서 폐출하라."올 것이 왔다. 정난으로부터 3년 8개월. 참으로 먼 길 에둘러 왔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려고 세월을 보내며 꼼수를 부려봤지만 종착지는 찬탈(簒奪)이다. 역사는 행하는 자가 쓰지 않는다. 시대를 호흡했던 자는 역사에 부역할 뿐이다. 하여, 시간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인간의 가치를 정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