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벌어진 2011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오장동 사거리에 신호등의 불이 꺼져 있고 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최중경 전 장관은 한국 경제를 파탄낸 주범이다. IMF 당시에는 강만수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 휘하에서 원화 강세를 주도하며 외환 보유고를 급격히 소진시켰고, 그 결과 한국은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다. 이 정도는 본인이 높은 자리에서 저지른 일이 아니니 덮어주고 갈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노무현 정권 이후 그가 경제 부처 요직에 있을 때 저지른 일들은 덮어주고 갈 수가 없을 정도다.
2003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았을 때 그는 섣불리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환율 방어에 나섰다. '환율 주권론'을 부르짖으며 오늘날 그의 별명인 '최틀러'를 탄생시킨 이때 그의 행보는 결국 불과 며칠 만에 1조8000억 원의 외평기금(외국환평형기금)을 날려 어마어마한 국부 유출을 일으켰다. 그러고도 환율은 지키지 못하였고, 당시 외국인 투기자본은 막대한 환차익을 실현하고 돌아가버렸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 공황 속에 빠져있을 때는 어땠나. 그는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강만수 당시 장관과 함께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려했고, 그 결과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7년 만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서민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불합리한 환율 정책으로 인해 키코(KIKO,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손 위험을 줄이기 위한 파생상품)를 비롯한 환율 파생상품에서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막대한 외환 보유고가 유출됐다. 가히 IMF사태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이렇게 번번이 '사고'를 치고도 2004년에는 IBRD(국제개발부흥은행) 이사로, 또 2008년에는 주필리핀 대사로 전보하면서 문책 아닌 문책을 당한 그는 2010년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복귀했다가 2011년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지없이 여기서도 대형 사고를 터뜨리고 만다. 2011년 9월에 사상 최악의 정전 사태가 벌어졌을 때, 주무부처 장관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느라 현장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태가 벌어진 지 5시간이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를, 그것도 '달랑' 서면으로 했다. 그는 결국 이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못하고 장관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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