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최경준
"우와~ 마치 박물관 같네요."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선 기자가 탄성을 지르자, 브루스 커밍스(69) 교수도 "박물관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맞장구를 친다. 높은 천장과 널찍하면서도 미로 같은 통로, 수십 년도 더 된 듯 한 가구와 그림들. 이어진 그의 말은 왜 기자가 '박물관'을 연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 직접 이 집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기자가 커밍스 교수를 만나기 위해 온 버지니아대학교가 토머스 제퍼슨이 정계에서 은퇴한 뒤인 1819년 건립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이자 역사학과 과장인 커밍스 교수는 미국 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그는 수업이 있는 주중 며칠만 시카고에 머물고 금요일부터 주말 내내 그의 아내가 있는 버지니아대학 학장 관사에서 지낸다. 그의 아내 우정은(메레디스 우 커밍스·53)씨는 한국계 여성 정치학자로 버지니아대 예술과학대학 및 대학원 학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우정은씨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커밍스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에서 자동차로 내리 8시간을 달려왔다. 커밍스 교수 역시 코네티컷주 등에서 학술회와 강연회를 마치고 막 집에 도착한 상태였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그의 답변은 그의 저서만큼이나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은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었다.
커밍스 교수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1968년 평화봉사단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오면서부터다. 미 콜롬비아대학으로 돌아와서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동아시아 전공) 학위를 받고, 1981년 첫 저작이기도 한 <한국전쟁의 기원>을 출판하면서 한국학 학자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한국전을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형성된 한국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규정,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비밀자료와 북한 노획문서 등 폭넓은 자료 발굴로 연구 주제, 시기, 영역 등을 대폭 확장한 것은 물론 기존의 친미-반공주의적 연구 접근법에서 탈피함으로써 한국전쟁 연구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그의 주장은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민주화, 통일, 반미 운동과 맞물리면서 거세게 확산됐다. 그러나 '남침 유도설' 또는 '남침 묵인설'로 오인돼 북한의 남침을 믿는 보수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1980년대 공안당국의 '금서' 목록에도 올랐다. 또한 기존의 전통주의 시각은 물론 냉전 해체 이후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주장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으며 줄곧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한국 현대사를 진보적 시각에서 파헤쳐온 그는 한반도내 미국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주한미군 철수, 광주민주화운동 미국 개입설 등을 주창, 국내 사회과학계로부터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그는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도 스스로를 '반미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적대심만 쌓았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한의 우익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난 아주 오래 살 것 같다"며 "내 두뇌가 작동하는 한 계속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싶다"고 우스갯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특히 "내가 정말 일생 중에 보고 싶은 것은 남북통일"이라고 강조했다.
저서로는 <전쟁과 TV>(1993), <한국현대사>(1997), <양지 속의 한국>(1997),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2001년, 김동노 역),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의 북한>(2005년, 남성욱 역> 등이 있다. 그는 2010년에 발간한 <한국전쟁> 서두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다"라고 적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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