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생명연장, 가족이 거절했습니다

'산소호흡기 사용 안 한다'에 서명 "차마 못할 짓이지만..."

등록 2012.02.22 12:08수정 2012.02.2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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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으로 가는 길에 본 차창 밖 풍경
병원으로 가는 길에 본 차창 밖 풍경조상연

엊그저께까지 희망이 있다던 장인어른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왔다. 일산 병원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바라본 차창 밖 풍경.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란, 달리는 열차의 뿌연 차창을 통해 보이는, 명확하지 않은 바깥 풍경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빗발로 흐려진 창을 통해 보이는, 우리네 인생은 부평초처럼 목적지도 모른 채 흘러만 가는 것만 같다. 나 죽어 도착할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탄 인생이라는 열차의 출발역과 종착역을 이미 알고 있으니, 도대체 두려울 일이 뭐가 있을까. 공포라는 게 무엇인가? 다음에 벌어질 상황이 예측이 안 되니,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것이다.

생에 대해 젊은 사람들은 장담하지 마라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의 일이다. 직장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똑같이 '암' 진단이 나왔다. 그것도 두 분다 '암 말기'라서 치료가 불가했다. 한 분은 60대 초반, 한 분은 40대 후반이었다. 반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두 분의 투병기가 인상적이었다.

40대 후반의 그분은 치료해 봐야 반년을 못 넘긴다고 했으니 진통제나 맞으며 보험금으로 뒤에 남은 식구들 먹고살아 갈 호구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결국은 그 반년 동안 제법 깔끔한 음식점 하나를 마련해 놓고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그 자그마한 식당은 성업 중이다.

60대 초반의 또 한 분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 여러 병원에 다니며 모든 검사를 하여 옮겨 다녔다. 병원에서도 손을 놓자, 포천의 어느 기도원에서 치료가 아닌 기도에 의지하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객사하고 말았다.

결국, 40대 그분보다 한 달 더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참으로 비참한 것은 온 집안이 이 분의 병원비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어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장례를 치렀다.


나중에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장에서 이러한 사정을 아는 조문객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젊은 친구들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연세 좀 지긋하신 분들은 나이 들면 생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강해지니 젊은 사람들은 장담하지 마라.

'글쎄? 나라면 어찌했을까?' 내가 비슷한 경우를 한 번은 겪어 봤다고는 하나, 죽음이란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임은 틀림이 없다.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삶,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발 빨간 불이 들어오지 말아야할 텐데...
제발 빨간 불이 들어오지 말아야할 텐데...조상연

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고통의 단발마를 외치시는 장인어른을 향해 그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 드리고 왔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후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수술을 거부하고 산소호흡기 사용을 안 하겠다는 서명을 다섯 형제가 하고 만 것이다.

서명장 위에 떨어지는 다섯 형제의 눈물이 나를 참으로 슬프게 했다. 서명하는 큰 오빠의 멱살을 잡고는 울고불고 욕을 해대며 서명을 안 하겠다는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세상 어떤 자식이 살릴 수 있는 부모를 외면하겠는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삶의 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간신이 설득해서 결국은 서명을 했지만, 사람으로서 차마 못 할 짓이다.

서명이 모두 끝나고 나서 의사 선생이 반은 정신 나간 아내를 따로 불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의사인 자기들도 이럴 때가 제일 괴롭단다. 그러나 자기들도 이렇게 해야만 할 의무라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단다.

의식 없이 누워서 가족도 못 알아보며 숨만을 쉬는 삶, 자기들도 수없이 보는 삶의 연장이지만 고통받는 이에게 차마 못 할 짓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며 아내를 위로해 준다. 의사의 위로로 "오빠에게 미안하다"며 품에 안겨서 우는 아내가 이번에는 오빠를 위로한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큰 처남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해서는 "지금이라도 수술을 안 하겠다는 서명을 없던 일로 하고 싶다"며 대성통곡을 한다. 다독여서 전화를 끊고는 가만 누워 생각을 해보았다.

단순 생명연장만을 위한 선택권, 환자 가족에게 짐을 주다니...

글쎄? 내 생각으로는 이럴 때 의사의 판단으로 수술 여부를 정했으면 좋겠다. 삶의 연장만을 위한 그런 조치가 아니라 살 수 있는 사람을 살려낼 방법으로 의사의 전문 판단에 따르자는 것이다.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환자의 가족에게 단순 생명연장만을 위한 수술과 산소호흡기 사용 선택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장인어른의 삶의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일로 살 수 있는 아버지를 자신들의 서명 때문에 돌아가시게 했다는 죄책감과 마음의 상처를 자식들이 안 받았으면 좋겠다.
#산소호흡기 #생명연장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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