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교문을 넘다> 책표지.
한겨레에듀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개인적 감정 없이 오로지 학생을 위해 '사랑의 매'를 든다는 말을 인정한다 해도 왜 그런 논리는 학교에서만 통하는 것일까. 인권의 사각지대라 할 만한 군대나 교도소에서도 공식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후임이나 죄수를 때릴 수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공식적으로 가능하다.
두발 규제도 마찬가지다. 학교 외에 머리카락의 길이와 모양을 규제하는 곳은 역시 군대와 교도소 정도 외에는 없다. 이유야 어쨌든 학생들의 인권은 군인, 죄수와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열악하다.
"학생이 학생다워야지"라는 말 한 마디에 학생들은 머리를 기를 자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 연애할 자유, 보충수업을 하지 않을 자유, 그리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간답게 살 자유를 박탈당한다.
인권교육센터 '들'이 기획하고 6인의 인권단체 활동가, 교사 등이 쓴 <인권, 교문을 넘다>는 이제까지 '교문 앞에서 멈춰 있던' 학생인권의 실태를 고발하고, 나아가 쟁점별로 학생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서로 부딪히는 것일까이 책은 1부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진 후, 2부에서 두발 자유, 체벌, 휴대 전화 단속 등의 주요쟁점을 다루고, 3부에서는 학생인권을 억누르는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를 다룬 3부 3장이 흥미롭다.
지난 1월 공포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교권이 추락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주장의 저변에는 학생 인권과 교권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생각이 근거가 무척 박약한 것임을 보여준다.
교권 붕괴를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 정책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내놓은 통계자료만 봐도 교권 침해는 주로 다른 이유로 일어난다. 2008년 당시 1순위로 꼽힌 교권 침해 유형은 "학부모의 부당 행위"였고, 2순위가 "학교 안전사고 처리 과정에서 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과중한 배상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3순위가 "교직원 간의 갈등"이었다.…(중략)…2010년 10월, 전교조 참교육연구소가 교사 1천5백여 명을 대상으로 '누가 교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자, 교육부가 1순위, 교육청이 2순위, 학교 관리자가 3순위를 차지했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한다고 답한 교사보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교사의 수가 더 많았다. 교사들은 교권이 지켜지려면 교사의 기본권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화나 입시 경쟁 교육의 해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학생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답은 3%에 불과했다.-<인권, 교문을 넘다> 266p~267p
그러면서 이 책은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교육내용과 평가 방식 등 교육 과정 전반을 결정하는 국가이며, 교사는 정치활동 등의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형편 때문에 있다고 말한다.
또 이처럼 열악한 상황 때문에 교사도 학생 지도‧통제권에만 매달리고 있지만, "진정 존중되어야 할 교권은 교육의 자유와 교사의 인권"이라 주장한다. 명쾌하면서도 "교사와 학생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않은 윤리적인 결론이다.
다른 학교는 가능하다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그래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타국의 사례들이었다. 특히 일본의 두발 자유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