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행> 표지
삶이 보이는 창
두 남녀가 있다. 여자는 29세, 남자는 23세. 상관인 여자는 팀을 이끌고, 부하인 남자는 지도를 받으며 그녀를 보필한다. 둘 다 미혼에 공통의 비전이 있고, 서로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있다. 여자는 아리땁고 남자는 듬직하다. 이들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요즘 TV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이야기이라면, 남자 측 부모의 반대가 이들이 행복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겠다. 그러나 이들이 1940년대 전쟁이 한창인 중국 땅에 있다면, 그것도 하루하루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전투를 치르는 전사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 소설 <연안행>(2011, 삶이보이는 창)은 이재유의 삶을 다룬 <경성트로이카>를 시작으로 <이현상 평전> <이관술1902-1950> <박헌영 평전> 등을 차례로 쓴 안재성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에게 한국 근현대사는 지난 10년간 일관된 소재였다. 이 작품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는데,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내에서 국외로 배경이 옮겨졌다는 것.
소설 <연안행>은 1940년대 중국 팔로군과 함께 항일 전선에서 싸우던 조선의용군의 이야기로, 정치위원 정명선을 향한 사병 임상혁의 사랑이 험준하고 광활한 태항산맥을 배경으로 지고지순하게 펼쳐진다. 그는 사랑과 동지애 사이에서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낙담한다.
조선의용군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1937년 일본은 상해에서 노구교 사건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아시아 대륙 침략에 나섰다. 드넓은 중국 땅에 흩어져있던 조선의 독립운동세력은 조선뿐 아니라 아시아 공공의 적이 된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하게 된다. 의열단 단장으로 유명한 김원봉과 윤세주 등이 1938년 10월 중국 한구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였고, 조선의용대는 중국군의 지원 아래 항일전의 선전부대로 활동하게 된다. 수많은 조선의 청년들은 오직 식민지 조국 해방의 열망을 안고 중국으로 건너와 조선의용대에 자원입대한다. 주인공 임상혁도 그 같은 젊은이들 중의 하나였다.
중국 항일전선에서 조선인 청년들은 매우 용맹할 뿐만 아니라 일본어가 자유로운 까닭에 선전전과 포로 심문 등에서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조선의용대는 선전부대에 편입되어 함화, 삐라 살포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일본군을 코앞에 둔 거리라야 함화같은 선전이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언제나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대륙을 침략한 일본군 때문에 서로 내키지 않는 손을 잡고 제2차 국공합작에 들어갔지만 점차 대립의 각을 세운다. 특히 일본군과의 전투보다는 정적인 공산주의자들을 암살하는 데 더 열심인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항일전을 치르고자 했던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리하여 조선의용대는 항일전선을 찾아 팔로군이 있는 화북지역으로의 이동을 단행한다. 더구나 화북과 동북지역은 지역은 조선인 동포들이 300만 명 가까이 살고 있어 이동의 명분이 있었고, 실제적 무장독립투쟁을 하기엔 더없이 좋았다.
이 소설은 조선의용대가 국민당군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걸고 황하를 건너는 과정과 화북지대에 다다른 후 천신만고 끝에 태항산으로 들어가는 과정, 도처에 깔린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중국혁명의 성지 연안으로 입성하는 과정 등이 생생히 서술되어 있다. 또한 팔로군과의 긴밀한 유대 속에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는 장면이 긴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1942년 5월, 일본군이 3만의 병력을 투입하여 태항산 일대를 철벽처럼 에워싸고 집중 포화를 퍼붓기 시작한다. 전투에 단련된 전사들이었지만, 화력에서 우세한 일본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 5월 대공세 때 조선의용대는 너무나 소중한 동지들을 잃는다. 조선의용대의 지도자였던 윤세주와 진광화가 전사하고 만 것.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으나, 이들은 동지를 잃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 조직을 더욱 굳건히 세운다. 다소 민병대 느낌이 나는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로 재편성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정규군이 된다.
김원봉, 무정, 윤세주, 김명시 등 친근하게 만나는 실존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