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생일카드유진이가 써준 정호 생일 축하 카드
양학용
상훈이는 라오비어 두 병을 받아들고 동생들에게 고마운지 입이 한껏 벌어졌고, 정호는 반팔 티셔츠를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어보였다. 유진이는 오전 내내 만든 대형 생일카드를 건넸고, 수경이는 편지를 써주었고, 성호와 승현이는 숙소에서 잡은 도롱뇽 한 마리를 정호에게 선물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정호의 티셔츠를 사느라 정호를 골려먹은 일이다. 윤미와 도솔이와 수경이가 정호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네 옷을 사는 거라며 정호의 취향대로 고르게 한 것이다. 말하자면 정호가 자신의 생일 선물인 줄도 모르면서 자신의 티셔츠를 고르게 한 셈이었다.
그때 언제부터 자리하고 있었던지 두세 테이블 너머에 있던 군청색의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 다가왔다.
"학생들, 한국에서 왔나봐?"이곳 라오스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는 한국인 건축 기술자들이었다. 동남아 여러 나라에 건축기술을 전수하고 있는데, 라오스가 여덟 번째 국가라고 했다. 그들은 설비, 전기, 목수 등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개했다.
강가 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보니, 나와 아내를 발견하지는 못하고, 청소년들끼리 여행을 온 줄로 알고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온 것이라 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여행이 힘들지 않느냐고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고국에 있는 아들딸들이 생각나는지 한참을 눈으로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대뜸 김치를 한 접시 내 놓았다. 열무의 무청을 닮은 채소였다. 그들이 땅에다 직접 채소를 심어 담근 거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자 그 귀한 김치를 까만 봉지에 가득 담아준다.
족히 3kg이 넘는 양이었다. 우리들은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일 뿐이고 그들은 앞으로도 1년 이상 이곳에서 머물러야할 텐데…. 미안해도 그분들의 마음이 고마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을 나눠주는 마음을 가르쳐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김치라는 음식 하나로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준 것 같아 더욱 고마웠다. 그날 하루도 우리들은 길 위에서 그렇게 작지만 고마운 배움의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생일 케이크케이크에 정호와 상훈이 이름이 적혀 있다.
양학용
참, 밥을 먹지 않던 도솔이는 그날 처음 라오스 볶음밥 '차오판'을 먹었다. 그 아이의 반응은 기대한 것처럼 평균 이상이었다.
"음~, 생각보다 맛있어요."
<사람은 자연을 닮고 사람과 사는 동물은 사람을 닮겠지> - 김하영(20세) |
산 위에 있는 사원을 갔는데 공사 중이라 법당 안에는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강아지를 만났다. Lao people이나 Lao dog나 Lao cat이나 Lao baby나 다들 순하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의) 3층 응접실에 가서 메콩 강과 반대편 태국 땅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이런 환경과 사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생길 수 없을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것도, 타인을 경계하는 것도, 타인에게 불친절한 것도 결국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콩 강을 뒤에 두고 스쿠터를 타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음, 또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또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보는 여기 사람들은 우리보다, 나보다 두려움이 훨씬 적다.
사원에서 만났던 강아지. 그 강아지도 곧잘 앉아서 눈도 맞추고 손바닥도 핥아주고 하는 게 너무 예뻤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사람과 사는 동물은 사람을 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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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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