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4월 24일 오전 서귀포시 성산 일출봉 잔디광장에서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세계 7대 자연경관 제주 선정기원 관광문화축제'에서 정운찬 범국민추진위원장과 우근민 제주도지사, 뉴세븐원더스 설립자 버나드 웨버 등 제주도민들이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유성호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가장 앞서서 이끌었던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도 이러한 '공무원 자비 전화투표'를 독려했다. 그는 지난해 5월 2일 열린 직원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100통화를 한다고 치면 1만8000원 정도 든다. 우리 100만 내외 도민이 100표씩만 찍도록 하면 1억 표가 금방 된다. 이런 기회에 우리가 한 달에 2만 원 정도 더 쓰면 후대에 자손들로부터 '가장 위대한 조상'이라는 소릴 들을 수도 있다. 한번 해보자."이러한 '공무원 자비 전화투표'가 공무원노조에 의해 실행 전 중단되긴 했지만 '공무원 동원'이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강문상 전국공무원노조 서귀포시 지부장은 당시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무원들을 동원하려고 머리를 짜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 압력에 결국 전화요금 공개... 총 268억 썼다제주도는 지난해 6월 편성한 추경예산안에 '투표용 공공전화요금' 30억 원을 포함시켰다.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에 세금 30억 원을 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9월까지 진행한 전화투표건수는 1억 통을 넘어섰다. 전화투표 1통당 198원이라는 점을 헤아리면 예산범위에서 훨씬 벗어난 약 200억 원의 혈세가 전화투표에 사용된 것이다.
이렇게 과도한 전화투표로 인한 논란이 크게 일자 제주도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국제전화요금 정보공개 청구에 '비공개' 결정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투표에 들어간 전화요금이 40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던 제주도가 지난 9일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투표에 사용한 행정전화요금을 전격 공개했다. 제주도가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과 관련된 현안보고를 하면서 행정전화요금 내역을 공개한 것이다.
그동안 '비공개' 결정으로 대응해오던 제주도가 서둘러 '공개'로 태도를 바꾼 셈이다. 이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 데 따른 '응급조치'로 보인다. 제주도가 전화요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기 이틀 전인 지난 7일, 제주환경련 등 제주지역 7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며 제주도를 세게 압박했던 터였다.
이날 제주도가 도의회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KT는 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와 관련 제주도 58억7600만 원, 제주시 76억700만 원, 서귀포시 77억300만 원 등 총 211억8600만 원의 전화요금을 부과했다. 총 1억700만 통(한통당 198원)의 전화투표를 했고, 제주도 공무원(7500여명) 1인당 평균 1만4000여 통의 전화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화투표에 '혈세'만 들어간 게 아니다. 민간인들이 전화투표용도로 기탁한 돈이 있는데 그 금액도 무려 56억7000만 원이다. 결국 전화투표에 들어간 돈은 총 268억5600만여 원에 이른다.
제주도가 세금으로 쓴 211억8600만 원의 전화요금 가운데 지난해까지 KT에 납부한 금액은 104억2700만 원으로 드러났다. 다만 공영민 제주도 지식경제국장은 "KT에서 자신의 이익금 41억6000만 원은 미납요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며 "실제 부과요금은 170억2600만 원이어서 앞으로 65억9900만 원을 더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납요금 65억9900만 원은 앞으로 5년 동안 매달 1억1000만 원씩 나누어서 내기로 했다고 한다. 연간 13억2000만 원에 이르는 세금이 5년 동안 전화요금으로 나가야 한다. '세계 7대자연경관'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한 '출혈'은 이렇게 컸다.
혈세 211억, 1조원 이상 경제효과를 위한 마케팅 비용?세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 캠페인은 선정 주체(뉴세븐원더스재단)의 공신력과 상업주의, 투표방식과 결과발표의 신뢰성과 공정성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는 그런 논란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을 대거 동원해 211억여 원에 이르는 세금을 전화투표에 쏟아부었다. 뒤늦게 무차별적인 공무원 동원과 거액의 예산낭비를 향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제주도에서 전화투표에 사용한 211억여 원은 제주도의 2012년 예산액(3조763억 원)의 약 0.69%에 해당하는 수치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 등은 "제주도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자"고 항변했다. 정운찬 전 범국민추진위 위원장과 양원찬 전 사무총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