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꼼수> 한미FTA 반대 특별 야외공연 모습
유성호
멀리 돌아왔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기껏해야 조금 모자란 수컷들이 저지른 실수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리하여 탁월한 통찰과 두려울 것 없는 배짱으로 권력을 조롱하던 그들에게도 실은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논란이 커져가는 것을 오랫동안 말 없이 지켜보다 결국 비겁하게 피해가고 말았다. 그 사이 논란은 성 대결로 번져갔고, 곧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곳 <오마이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나는 걸핏하면 시청 앞에 모여 불놀이를 즐기곤 하는 어버이들이 떠오를 정도로 섬뜩함을 느꼈다. 공지영도 자신의 트위터를 보며 절망했던 모양이다.
결국 이번 일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른바 '꼴통 페미니스트'들이 건전한 상식을 갖춘 '합리적 시민들'에게 또 한 번 혼쭐이 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꼴통 페미니스트들'은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 꽤 오랜 시간 숨죽여 지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다행히 또 어떤 '꼴통 보수' 정치인이 술에 취해 한 마디를 뱉어 준다면 조금 빨리 땅 위로 올라설 수도 있겠지만, 요즘 여의도 분위기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조금 더 평등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아니, 이번 일로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불평등해졌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 가운데 무려 72.6%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경향신문, 2012.1.31)고 말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대학교 1학년 때 여성학 교양 강의를 들은 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욕망을 농담에 실어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불편한 표정이라도 지으면 '그 정도는 나도 다 안다'고 타이르면 그만이다. 그리고 불편함을 드러낸 그 여성에게는 당연히 '꼴통 페미니스트'라는 차가운 낙인이 찍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 여성들은 주변의 남성들에게 자신은 그런 '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 받기 위해 더 환하게 웃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동안 <나꼼수>가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 정치 의식을 끌어올린 것에 비하면 그깟 문제가 대수냐고 따질 것이다. 보수 정권을 끌어내리고 진보적인 정부를 세울 수만 있다면 이번 논란을 통해 얻을 수 있던 '소소한 진보'보다 훨씬 더 '크고 엄청난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국회를 절반씩 나눠가진다고 한들, 또 문재인과 안철수가 앞으로 10년간 번갈아가며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고 한들 세상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만큼 바뀌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때도, 참여정부 때도, 또 열린우리당이 국회의 절반을 차지했을 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올해 있을 두 번의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있을 무수한 선거들 모두가 그 두 번의 선거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있을 모든 선거들을 똑같은 기대를 가지고 똑같이 진지하게 대해야 하며, 또 그 두 번의 선거를 위해서라면 쉽게 지나치거나 포기해도 되는 소소한 문제들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같이 부딪히는 소소하다고 여기는 문제들, 그러나 한두 번의 선거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그 문제들이 실은 오늘 나와 내 이웃들의 삶을 더 숨 막히게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길 위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집 안에서도 불쑥불쑥 덮쳐오곤 하는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폭력의 그림자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꼼수>가 올해 있을 두 번의 선거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하든 그들이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 이번 일로 절망감을 느꼈거나 상처를 받았을 모든 이들을 위해, 그리고 아쉽게 놓쳐버린 기회를 위해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나꼼수>와 청취자들에게 바라는 것<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1990)라는 20년도 더 된 영화가 있다. 인터넷도 트위터도 없던 시절, 10대들의 억눌린 욕망을 라디오 전파에 실어 보내던 어느 해적 방송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크리스찬 슬레이터)의 거침없는 방송이 또래들을 하나 둘 라디오 앞으로 불러 모으던 어느 날, 방송을 즐겨 듣던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그 일로 죄책감을 느낀 주인공은 방송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B급 문화'로 따지자면 <나꼼수>보다도 서너 단계는 아래 급인 그야말로 막 나가는 방송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매체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만큼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지난 며칠 <나꼼수>의 모습을 보며 아쉬웠던 부분이다.
나는 영화에서처럼 <나꼼수>가 경찰에 붙잡혀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방송들이 더 많이 생겨나 그들이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짐을 여럿이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이 진보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도, 또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일에서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에는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도, 또 해결하지도 못할 일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이번 일처럼 <나꼼수>가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
끝으로 이번 일로 실망하거나 상처 받았을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쫄지 마,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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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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