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의 체결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 원래 덕수궁 안에 있었으나, 도로가 생기면서 궁 밖으로 밀려났다. 서울 중구 정동극장 북서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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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체결의 열쇠가 루스벨트의 손아귀에 있다는 점은 고종 황제도 잘 알고 있었다. 러·일 간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면 자신이 왕관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고종은 서른한 살의 청년인 이승만에게 밀서를 주어 루스벨트를 방문하도록 했다. 밀서의 요지는,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 의해 침해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때는 루스벨트가 중재에 착수한 직후인 1905년 7월 6일이었다.
고종이 미국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조선 시장에 진출하는 조건으로 조선에 대해 안보 제공을 약속했다. 이 조약 제1조에서는 "만약 제3국이 일국 정부에 대해 부당하거나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 타국 정부는 그 사건의 통지를 받은 뒤에 원만한 타결을 목표로 중재를 다함으로써 우호를 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제3국이 조선을 위협할 때는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는 조항이었다.
한미수호통상조약대로라면 루스벨트는 한·일 사이에서 중재를 개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특사 이승만이 전달한 밀서를 거부했다. 정식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정식 문서를 공개적으로 가져갈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랬던 것이다.
루스벨트, 일본 편든 것은 미국 국익에 부합했기 때문루스벨트가 노골적으로 일본을 편든 것은,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미국을 방문할 당시 미·일 간에는 모종의 커넥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커넥션의 결과가 1905년 7월 29일 체결된 미일비밀협약이었다.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알려진 그것이다.
밀약의 핵심은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보장하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필리핀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고자 일본의 한국 지배를 열렬히 지지했던 것이다. 일본이 오키나와에 이어 대만을 점령함으로써 동아시아 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였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보장을 받는 것이 필리핀 지배에 유리했던 것이다.
1882년 당시 고종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문호를 개방했다. 이때 그는 청나라 외교관인 황준헌이 집필한 <조선책략>이란 논문을 근거로 미국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항상 약소국을 돕고 공의를 유지하며 유럽인들이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문구를 근거로,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유사시 국가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기대를 저버리고 결정적 순간에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돕는 조력자로 돌변했다. 포츠머스 강화조약 2개월 뒤인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과 루스벨트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 일본이 한국의 왕관을 빼앗아 보관실(보호조약 상태)에 둘 수 있도록 루스벨트가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미국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만 해도 영국·러시아가 세계 최강이고 미국은 2위권 국가였기 때문에, 미국인들로서는 자국 대통령이 '세계평화'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영광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같은 미국의 영광은, 일본이 한국 왕관을 빼앗는 데 미국이 일조함으로써 가능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루스벨트의 수상 소식을 들은 고종 역시 '세상에 이런 상도 다 있나?' 했을 것이다. 한국과 노벨평화상의 인연은 이처럼 아주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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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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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배달한 고종 밀서... 루스벨트 왜 거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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