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사 쌍탑김유신이 세운 원원사의 터에 남은 두 탑이 솔숲 속에 나란히 서 있다.
정만진
김유신 본인도 뒷날 집앞 산기슭에 천관사(天官寺)를 짓고, 경주 남쪽 모화리의 봉서산 중턱에 원원사(遠願寺)를 창건한 사람이다. 자기 재산을 들여 종교시설을 건축하는 사람은 그만큼 신앙심을 마음에 굳게 가지고 있는 독실한 신자이다. 그렇게 보면, 김유신은 어쩌면 이곳 보탑사에서 어릴 때부터 불교 신앙을 배웠을 것도 같다. 아버지 쪽인 수로왕 등 금관가야의 왕족과, 어머니 쪽인 법흥왕, 진흥왕(김유신의 어머니 만명의 큰아버지), 진평왕 등이 하나같이 대단한 불교신자였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과 어머니 만명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보탑사에 열심히 드나들었을 것은 충분히 추측 가능한 일 아닌가.
어린 김유신, 부모 손잡고 보탑사에 다녔을 듯지금의 보탑사 3층 목탑과, 신라 때 이곳에 있었던 절의 탑이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유신이 살던 진평왕 무렵의 연곡리에 절이 있었다면 아마도 목탑이 사찰 경내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본래 우리나라 탑은 목탑에서 시작하여 전탑을 거쳐 석탑으로 나아가는데, 최초의 전탑인 경주 분황사탑이 건립된 때가 선덕여왕 3년(634)이므로, 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대에 진천 연곡리에 건립된 불탑은 목탑이었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또 그 탑은 저 혼자 외로이 서 있었을 것이다. 682년(신문왕 2)에 완성된 감은사의 동탑과 서탑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쌍탑이니, 그보다 전인 595년(진평왕 17)에 태령산 아래에서 태어나 대략 610년 무렵까지 진천에 거주한 김유신이 보탑사를 찾았다면, 당연히 그곳에는 사찰 마당의 한복판에 탑이 하나만 우뚝 서 있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어린 김유신이 부모의 손을 잡고 드나들었을 법한 충청북도 진천군 만뢰산의 보탑사, 3층목탑을 자랑하는 고찰 유적지이다. 그곳의 3층 목탑은 남북통일을 기원하여 제작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게다가 안에서 3층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유일한,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건축한 명작 예술품이다. 김유신 생가와 태실을 찾은 답사자라면 절대 잊지 말고 방문해야 할 필수 여행지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