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상추 몇 다발을 건넸는데 김유평씨네는 열톳이 넘는 김 다발을 선사했다. 푸진 고흥의 인심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송성영
이 김에는 도화면 발포에서 김 가공공장을 하고 있는 박원희, 김유평씨 부부의 정성스런 손맛이 담겨 있다. 김유평씨 부부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재작년 겨울이었다.
평택 대추리 평화공원에 설치했던 작품 '파랑새'를 조각했던 조각설치작가 최평곤 선생의 부탁을 받고 김 공장에서 나오는 대나무로 만든 김발을 구하기 위해 처음 찾아갔다. 주로 대나무를 이용해 설치조각을 하고 있는 최 선생이 버려지는 김발을 재활용하여 설치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유평씨네 김 가공공장을 달랑달랑 빈손으로 찾아가기가 민망해 초겨울까지 푸르게 밭 한구석을 지키고 있던 상추를 한 박스 뜯어갔다. 사정 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상추를 정말 잘 먹겠다"며 산타클로스의 선물 자루만큼이나 커다란 비닐봉지에 뭔가를 가득 담아 건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워 주저주저 건네받은 그것은 바로 김이었다. 한두 톳 정도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할 판이었는데 열 톳 넘게 건네주었던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우리 가족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우리는 그 김으로 신세를 졌던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까지 쓸 수 있었다. 고마운 이웃사촌이 되어준 김유평씨 부부는 지금까지 우리 식탁에 김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고 있다. 나는 그 고마움에 바다낚시로 건져온 횟감으로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올해는 김에 대한 보답으로 농사 지은 쌀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미식가와는 거리가 멀다. 반찬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맹물에 밥 말아 마른 멸치 하나로도 족할 정도로 대충대충 먹어가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전남 고흥에 와서 입맛이 달라졌다. 낚시대를 메고 바다로 나서면 먹을 수 있는 횟감이며 입에 착착 달라붙는 김유평씨의 김 때문이다. 그의 구운 김은 보통 구운 김보다 기름을 적게 발라 김 고유의 맛이 살아 있다.
마른 김 또한 달콤하면서도 고소하다. 그 김으로 양념간장에 김밥처럼 말아먹거나 바다낚시를 다녀오는 날이면 생선회를 싸 먹기도 한다. 때로는 불에 살짝 구워 군것질거리로 삼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 식구와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의 입맛을 좋게 하는 김유평씨의 김. 아무런 첨가제도 넣지 않았다는 그의 김에는 어떤 특별한 맛을 내게 하는 기술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물었다.
"김 만들어내는데 뭔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남유?""뭔 특별한 기술이 따로 있겄소. 우선 자색 빛을 띤 유리알처럼 맑은 빛깔의 좋은 물김을 구입해야제. 그 김을 공장에 가져와 상하지 않게 적당히 절단하고 숙성시켜야 하는디, 김 맛이 좋은 이유를 딱히 이것이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청정 바다에서 나온 김 본래의 맛을 잘 살려내고 그것을 다시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 맞춰 뽑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김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그에게는 김 냄새와 더불어 바다 냄새가 난다. 그의 김 만들기 비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0여 년 간의 김 공장 경험과 어장, 김 양식장 등을 통해 평생 거친 바다와 부대끼면서 얻은 노하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로도 화력발전소 때문에... 김씨의 낯빛이 어두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