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는 시내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의 '입, 출구'역할을 한다. 따라서 업무시간도 새벽 4시 대로 상당히 이른 편이다.
노동세상
지하철 첫차를 타고 온 첫 승객은 인근 공장 앞 슈퍼마켓 아주머니다. "가게 하기 싫어 죽겠다"하면서도 "근처 편의점이 없어져서 그나마 장사 좀 된다"고 안도한다. 지강씨는 아주머니의 잡담을 받으며 딸들의 안부도 챙겨 물었다.
"이 노선은 손님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늘 타는 분들은 좀 알죠." 시간이 바뀌면 승객도 바뀐다. 7시 전후엔 직장인들이다. 이삼십 명이 인근 공장이나 지하철역에 우르르 내리면, 8시부터 중고등학생들이 우르르 탄다. 학생들도 내리고 아침 토스트 노점 트럭이 군밤 트럭으로 바뀔 즈음부터는 주로 나이든 주민들이 탄다. 그들을 싣고 운행구간 한 바퀴를 도는 데 50분이 걸린다. 하루에 8~10바퀴를 도는 셈이다.
애초 근로계약은 50분 운행 후 종점에서의 대기시간 10분을 휴게시간으로 정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시간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개 5분 안팎밖에 못 쉬거나 그마저도 못 쉬고 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하루 평균 두세 번은 있다고 했다. 배차 간격을 맞춰 다녀야 하는데, 팀장이 이를 임의대로 짧게 정하는 게 문제였다.
"얼마 전엔 2분만 대기했다가 바로 나가라는 거예요. 천천히 다녀야 차도 안 망가진다나?"운행시간을 최대한 늘려 천천히 다니고 쉴 틈 없이 바로 출발하라는 요구였다. 실제 한 번은 종점에 들어왔다가 무전을 듣고 바로 다시 출발했다.
"팀장 차가 갑자기 빠진대서 배차간격 다시 맞춰야 하거든요." 다시 한 바퀴를 돌아 종점에 정차한 지강씨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돌아와 다시 출발하기까지 5분이 채 안 걸렸다. 퇴근시간이 겹쳐 차가 밀리고 손님도 많은 저녁 시간은 시간을 맞추기 더욱 빠듯하다. 김밥 한 줄을 다 못 먹을 정도다.
"한 바퀴 돌아와서 김밥 두 개, 또 한 바퀴 돌아와서 김밥 세 개 이런 식으로 먹는 거예요. 시간이 없으니까. 아니면 배차간격이 넓을 때에 밥을 먹죠. 53분에 들어와서 정각에 출발할 때가 있거든요. 그렇게 7, 8분 남을 때 저녁 도시락 싸온 거 먹는 거죠." 10시간 운전하면서 초코파이 하나로 버틴 적도 있었다. 식사할 시간을 20분만이라도 제대로 보장해 달라는 그의 말에 팀장은 싫으면 그만 두라고 응수했다. "돈을 달란 것도 아니고 밥 먹을 20분만 보장해달라고 한 건데..." 버스가 느리게 다니니 승객 또한 불편하다.
"왜 이렇게 느리게 오냐고 항의도 계속 받죠. 또 우리 버스랑 구간이 겹치는 다른 마을버스가 있어요. 그 차랑 우리 차랑 오면 사람들이 우리 차 안 타요. 느리게 가니까. 종점에서 2분만 대기하고 가려면 신호가 파란불이어도 안 지나가고 정류장마다 서 있다가 최대한 천천히 가야 된단 말예요. 빨리 가려고 버스 타는 건데 누가 좋아하겠어요."결국은 사고까지 났다. 동료 기사 김영준(가명)씨는 운행 중간에 급히 화장실에 가려다 크게 다쳤다.
"근처 건물에 뛰어 들어갔는데, 중간에 유리문이 있었어요. 그거 못 보고 달려가 세게 박은 거야. 쌍코피에 이도 나가고 입술도 꿰매고. 치료비도 자기 돈으로 부담했어요." 회사는 4대 보험료는 징수하지만 산재처리는 해주지 않는다. 보험료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한 번은 이근형(가명)씨가 사무실 옆 식당에 미리 시켜놓은 밥을 먹으려고 서둘러 들어오려다 사고를 냈다. 운전을 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던 시간강사였다. 사고비용을 내느라 한 달 월급을 날렸다. 불평도 못 하고 "나 때문에 너까지 늦었구나"하며 미안해하던 형을, 지강씨는 씁쓰레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한 달 28일, 약 262시간을 일한다. 주 65.5시간이다. 주 40시간이라는 법정근로시간도, 일요일, 공휴일도 의미가 없다. 한달에 두 번 있는 무급휴일도 전날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약 17시간을 근무해야 얻을 수 있다. 부모님의 생일잔치 때는 아예 미리 사정을 설명했지만 결근 처리돼 임금이 깎였다. 경조사는커녕 제 몸도 못 챙길 지경이다. 오랜만에 동창들과 산에 하루 가기 위해, 지강씨는 다른 기사들과 시간을 바꿔 3일 내내 17시간씩 일했다. 교대할 사람이 없었다. 그 3일 동안은 10시간도 채 못 잤다.
부부가 저녁밥 한 번을 함께 먹기 힘들었다. 부인 자영씨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경 들어온다. 지강씨는 오전조 주간엔 부인이 돌아오기 전인 밤 10시에 자야 하고, 오후조 주간엔 자영씨가 자고 있을 새벽 1시~2시 사이에 귀가한다. 자꾸만 엇갈린다. 휴일에 몇 번 영화를 본 것 외에는 따로 놀러 갈 수도 없었다. 시간도 없을 뿐더러 1주일마다 수면 리듬이 바뀌니 몸이 늘 피곤해서다. 아이를 유산한 때에도 자영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전화를 받을 짬이 없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병원에서 홀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엄마처럼 따르는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눈물이 났다.
장시간 노동, 위험은 필연장시간 운전의 스트레스는 질병, 사고 위험과 맞물린다. 더구나 운행구간의 대부분은 2차선이거나 폭이 좁은 골목길이다. 운전이 만만치 않은 곳이다. 갑자기 택시가 끼어들면,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뛰쳐나오면, 길모퉁이에서 자전거가 튀어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니까 그게 다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어떤 때는 나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몸이 힘들어요. 가슴이 막 두근거릴 때도 있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몸이 위험신호를 보내는 거지. 어떤 형은 경력 1년 채우는 날을 보름 남겨놓고 그만 뒀어요. 너무 아파서. 병원 갔는데도 이유를 못 찾았대요. 그래서 계속 병가 쓰는데 회사는 그걸 또 결근처리 하고." 지강씨는 최근 허리 통증을 얻었다. 오랜 시간 앉은 자세로 운전하며 과속방지턱 70여 개를 매일 넘어 다닌 결과다. 아픈 어깨와 목은 운전하는 틈틈이 돌려주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스트레스는 술로 달랜다. 건강이 빠르게 악화돼 한약을 먹기도 했다.
휴식시간을 보장할 방법은 있다. 예비운전자를 더 채용해 교대해주면 된다. 알아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지강씨의 회사에서 일하는 운전기사는 총 10명. 보유한 차량은 7대다. 5명씩 주야교대로 일하니 차량을 다 돌리지도 못한다.
"적어도 한 조에 7명은 있어야 해요. 그럼 돌아가면서 하루씩 쉴 수 있잖아요."취업 초반엔 더 심했다. 취업 후 견습기간 15일 동안은 임금도 휴일도 없이 일했다. 그 후 수습기간 3개월 동안은 110만 원만 받고 휴일 없이 매일 일했다. 임금 수준은 11개월째 근무한 지금에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지강씨의 11월 급여는 150만 원. 실수령액은 134만 원이었다.
"완전 인건비 따먹는 구조죠. 그러다 보니 사람이 계속 나가고, 충원이 안 돼요. 처음엔 사람이 없어서 7대 중 3, 4대만 돌렸어요. 한 달 만에 3명씩 그만두기도 하고. 지금 우리 조도 저 빼고는 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에요. 쉬지도 못하고 돈도 못 받는데 누가 계속하겠어요. 그러니 또 있는 사람들만 쪼는 거죠."부당한 처우는 악순환을 강화한다. 교통사고 처리비용을 보험으로 다 처리하지 않고 기사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자부담 관행도 그 중 하나로,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이 종종 제기하는 문제다. 불과 2주일 전 지강씨의 동료 기사인 김병주씨(가명)가 일을 그만둔 원인이기도 했다.
일요일 밤 12시까지 일하고 월요일 새벽 4시에 출근한 날이었다. 운행 중 갑자기 차가 끼어들었다. 김씨는 급정거를 했고 그 와중에 내리려던 승객이 넘어졌다. 하필이면 척추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회사는 보험처리를 할 테니 김씨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다. '사고 전의 임금까지 보류하고 보험금을 갚을 때까지 무임금으로 일하라는 내용이었다. 꼬박꼬박 낸 보험료도, 피곤한 사람들의 출퇴근길을 보장한다는 그의 자부심도 쓸모가 없었다. 쓰지 않으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자동차보험료 다 내는데 처리 안 해주는 건 보험료 착복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기사가 감당 못할 정도의 금액이면 어차피 보험처리해야 하는데, 그 사람을 데리고 있어야죠. 그렇게 몰아세우는 게 아니라. 회사가 영세해서 업무환경이 열악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열악한 거랑 부당한 건 다른 얘기잖아요." 도덕성보다 제대로 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해지강씨는 자신의 회사가 유난히 처우가 나쁜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의 처우는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체로 열악하다. 서울시내 마을버스는 총 1401대. 124개 업체가 업체당 7~36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운전기사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계약직이다. 26일 근무를 기준으로 평균임금 168만 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개 1일 2교대 혹은 맞교대제로 오전 4시~밤 12시까지 일한다.
이러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계는 일자리 자체가 가진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일단 업체들이 영세하다. 가족단위 운영이 많은 소규모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2004년 시행된 서울시의 환승제는 업체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했다. 다른 대중교통을 환승하고 마을버스에 탔을 경우 업체는 요금의 50% 정도만 받을 수 있다. 서울시의 마을버스 승객 환승률은 평균 64%다. 여기에 교통카드 수수료 2.6%를 제하면 수익은 더욱 낮아진다. 준공영제로 전환한 시내버스와 달리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마을버스는 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열악함은 쉽게 부당함으로 이어진다. 가장 손쉬운 수익 확보 방식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다.
이를 위해 운전기사들의 약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시내버스는 급여와 복리후생이 비교적 좋지만 동종업무나 마을버스 운전 경력을 필요로 한다. 반면 마을버스는 면허만 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따라서 초보자가 경력을 쌓기 위한 중간단계, 또는 운전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마지막 호구지책이 되곤 한다. 회사로부터 경력증명서를 받아야 하는 초보자나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고령자는 자연스레 회사의 요구를 거스르기 힘들어진다.
업체의 수익을 보전하면 나아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서울시는 지난해 마을버스 지원금을 14억에서 170억으로 대폭 늘렸다. 서비스, 경영평가를 통해 적자업체 42개와 성적이 좋은 업체 84개에 각각 지원금 90억과 성과급 60억을 차등지급해 인건비와 유류비, 운영비에 사용하게끔 했다. 나머지 20억은 시설개선비로 지급했다.
그러나 평가의 투명성과 책임 있는 관리감독이 미비한 지원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마을버스관리과 관계자는 "업체 평가와 관리감독은 마을버스운송조합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조금 지원의 기초가 된 경영실태조사도 마을버스 운송조합의 자체 설문조사에 상당수 의존했다. 개인사업자인 이상 실제 구체적인 경영실태와 사업규모는 실사하기 어렵다. 업체의 도덕성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원금 지급의 기초가 된 서비스, 경영평가내역과 업체별 수입현황 등을 포함한 경영실태 조사 자료는 공개를 거부했다.
도덕성만으로는 관리가 어려워 보인다. 단적인 예가 성과급 사용 여부다. 서울시는 성과급을 인건비에 60%, 시설개선비와 차량운영비에 각각 20%씩을 사용하게끔 했다. 지침대로라면 적어도 운전기사들이 평균임금 168만 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강씨는 "우리 회사도 성과급은 받았지만 기사들의 임금을 올려주진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