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물고기 버리다 발각된 '적색수배자'

뉴욕서 12년간 도피생활하던 살인혐의 한국인... 곧 한국 송환

등록 2012.02.08 09:50수정 2012.02.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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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바닷가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물에 버렸다가 경찰에 검거된 김아무개(58)씨가 결국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한국에서 살인 및 사기 혐의를 받고 12년간 미국에서 도피 생활을 해온 김씨는 인터폴(국제경찰)의 '적색 수배'자다.

인터폴의 최장기 한국인 수배자로 오랫동안 경찰의 눈을 피하는 데 성공했던 김씨가 끝내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은 낚시 때문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9일 오전 11시30분쯤(현지 시간) 뉴욕 롱아일랜드 그린항구 일대의 클락스 해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잡은 물고기 가운데 죽은 물고기를 바다에 버렸고, 이를 발견한 현지 경찰은 김씨에게 '죽은 물고기를 물에 던져 넣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뉴욕주는 환경오염 등을 막기 위해 죽은 물고기를 강이나 바다에 버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죽은 물고기를 계속 바다에 던져 넣었다. 결국 경찰은 낚시 규정 위반 벌금 딱지를 발부하기 위해 김씨에게 다가가 신원확인을 시도했다. 그러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한 김씨는 경찰을 떠밀고 인근 숲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단순 벌금 딱지를 떼지 않으려고 도주한 김씨를 수상히 여겼다.

미국은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와 일자리 부족 사태로 인해 불법체류자 색출과 추방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경찰은 김씨를 불법체류자로 간주, 지역 카운티 항공 헬기와 경찰견까지 투입해 대대적인 추격전을 벌인 끝에 항구 주변에 숨어 있던 김씨를 체포했다.

조사결과 김씨는 불법체류자인 것은 물론 한국에서 살인 및 사기 혐의로 기소 중지된 인터폴 적색 수배자임이 밝혀졌다. 적색 수배는 '즉각 신병을 인도해야 할 사람'을 뜻하는 인터폴의 체포 영장으로 수배 중 최고단계다.

김씨 "미국에서는 선량하게 살았는데"... 총영사관 "즉시 추방" 요청


김씨는 1999년 5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일하던 경북 칠곡1동 신용협동조합의 여직원 박아무개씨를 살해한 혐의로 수배 명단에 올랐다. 김씨는 부정 대출을 받는 형식으로 공금을 횡령하기 위해 박씨의 도움을 받아 각종 서류를 위조했지만, 박씨가 이를 상급 기관에 알려 해고됐다. 김씨는 이에 앙심을 품고 박씨를 살해한 뒤 도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스리랑카를 거쳐 미국에 입국해 12년간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지난해 10월 9일 경범죄로 체포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체포된 한국 범죄인은 미국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바로 추방되지는 않는다. 대신 '추방재판'을 받아야 한다. 김씨는 "미국에서는 선량하게 살았으므로 미국에 체류하겠다"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선임하고 추방재판을 신청했다. 미국법정은 한국에서의 범죄사실보다 실제 미국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를 기준으로 추방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에 뉴욕총영사관은 즉시 미 국토안보부에 "김씨는 한국에서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인물로 미국에서도 위험한 인물이므로 즉시 추방해 주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피력해 동의를 얻어냈고, 이를 재판부에 전달했다.

결국 지난 1월 열린 김씨의 추방재판에서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즉각 추방을 결정했다. 또한 미 국토안보부는 김씨의 한국 송환과 관련 호송요원 2명을 배정하고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뉴욕총영사관 경찰주재관의 동행을 요청했다.

이들은 뉴욕 JFK공항에서 한국 국적기에 김씨를 태우고 인천공항까지 간 뒤 공항에서 수배관서인 경찰청에 김씨의 신병을 직접 인계한다. 단순 불법체류자 추방시 호송관이 한국 국적기에 탑승시키고 항공기 문을 닫을 때까지만 호송하는 관례를 볼 때 이례적인 조치다. 특히 김씨의 편도항공료는 물론 국토안보부 수사관 2명의 왕복항공료까지 모두 미국정부에서 부담한다.

대구지방검찰청은 김씨가 한국에 송환되는 대로 기소할 방침이다.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이다. 현재 인터폴의 적색 수배 명단에 올라 있는 한국인은 김씨를 포함해 36명이며, 이 중 김씨의 수배 기간이 가장 길었다. 경찰은 수배자 중 24명이 미국에 숨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기호 총경(뉴욕총영사관 경찰주재관)은 "뉴욕에는 지금도 한국에서 죄를 짓고 나와 살고 있는 인터폴 수배자들이 많다"며 "뉴욕총영사관과 국토안보부, 뉴욕·뉴저지 경찰 등이 긴밀히 협조함으로써 이제는 사실상 이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뉴욕총영사관 관내 추방자는 22명에 이른다.
#뉴욕총영사관 #인터폴 #불법체류자 #수배자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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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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