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3월 17일 새벽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동아일보사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동아투위
그리고 우리는 매일매일 힘겹게 싸우면서 잃어버린 자유언론, 잃어버린 자긍심을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매일매일이 전쟁터와 같았지만, 그 매일매일은 환희였습니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사실보도'를 하는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이듬해 봄, 결국 우리는 모두 쫓겨났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 그리고 그 정권에 굴복하고 유착한 <동아일보> 경영진이 우리의 손에서 펜과 마이크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들판에서 살았습니다.
들판에서 살면서 때로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고, 수배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떳떳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역사 앞에 떳떳했습니다. 지금 이 나이 되어 40년 전의 일을 되돌아보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아도, 후회는 없습니다. 다시 그런 일이 온대도 그 길을 다시 가게 될 겁니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그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길이니까요.
당신들이 다시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으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작거부'라는 힘든 선택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MBC 노조원들은 지난달 30일 제작거부에 들어가면서 "국민에게 석고대죄 드린다"고 했습니다. "공영방송 MBC는 MB방송 MBC가 되었으며, 국민의 방송 MBC는 정권의 방송 MBC가 되었"기에, "더 이상, 뉴스데스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전할 수 없으며 더 이상, PD수첩을 통해 우리시대의 진정한 목격자로 역할 할 수 없기에 국민여러분 앞에 석고대죄 드린다"고 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부터 닷새 동안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이끌어 온 박성호 MBC 기자회장은 "현재의 뉴스는 아마도 군사정권 때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싸움을 "뉴스의 기본을 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조건을 위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6일자 <한겨레> 1면에 실린 익명의 MBC 기자가 쓴 글을 보면 MBC 안에 어떤 일이 벌어져 왔는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저항하면 해고와 징계를 받고, '강경분자'로 낙인찍히면 한직을 떠돈다고 했습니다. "아무개는 강경파라 민감한 자리에 둘 수 없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해오든 결국 결과물은 윗선의 의도대로 짜 맞춰진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부와 경제부 기사에서는 일선 기자가 쓴 원본을 따로 보관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그 이유가 참으로 어이없게도 '번거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을 할 때 <워싱턴 포스트>에서 목격했던 일입니다. 기자가 원래 쓴 기사를 부장이 손질할 때 그 흔적이 반드시 남도록 했습니다. 그냥 원고를 지워 버리는 게 아니고 원래 쓴 기사를 가운데 줄로 지우고, 그다음 고친 부분을 기록하고 그 원본을 보관했습니다. 나중 책임 소재를 따질 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MBC에서는 그 흔적을 다 지운다니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가려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참으로 용렬하고도 비겁한 짓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중간 간부로 있으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한미FTA처럼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기사는 '다른 기사가 많아 들어갈 자리가 없다',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것 없지 않으냐'며 주요 시간대에 다루지 못하게 하였고,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처럼 차마 내칠 수 없는 큰 논란들은 '콤팩트하게' 청와대와 여권 해명을 위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공영방송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MBC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KBS에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되어왔지요. 그래서 KBS의 젊은 기자, 피디들이 견디다 못해 2010년 7월에 한 달 가까이 파업을 했습니다. 그때 파업을 주도했던 새 노조 집행부 등 13명에 대해 KBS 경영진은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인 지난달 30일 '느닷없이' 중징계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엄경철 전 새노조위원장과 이내규 전 부위원장에게 정직 6개월을, 성재호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정직 5개월의 중징계를 내리는 등 모두 13명에게 무거운 징벌을 가했습니다. 그러자 징계를 받은 13명은 2월 1일, '김인규 심판의 화살이 되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10년 7월, 우리는 MBC 동지들처럼 차마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끄러움에 우리 일천여 조합원은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파업이 한 달이 되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그런데 저 특보사장 무리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파업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제멋대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징계를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흐르는 이 무도한 시대에 '징계'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초조함과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징계받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징계를 내린 저 특보사장 무리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이미 MBC 동지들이 배수진을 치고 관제 사장 김재철 퇴진을 위한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모든 언론사 동지들이 어깨를 걸고 MB정권의 방송장악을 깨뜨리고 하수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에 나설 때입니다. 우리 13명은 특보사장 김인규를 심판하기 위한 화살이 돼 날아갈 것입니다."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KBS 보도본부의 31기(2005년 1월 입사) 기자 21명이 MBC 기자회가 제작거부 투쟁에 들어가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MBC 기자회가 그제부터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달랑 15분짜리 MBC '뉴스데스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복잡합니다. 더 이상 창피해서 뉴스를 만들 수 없다는 그들의 염치와 분노는 사실 우리가 느껴왔던 감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마땅히 보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뉴스가 단지 권력자들에게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축소되거나 아예 취급되지 않습니다. 수준 높은 탐사 보도는 언감생심입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언론 본연의 기본적 역할마저 멸종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기자들은 지치다 못해 무감각해졌습니다. 문제의식조차 증발했습니다. 우리에겐 냉소와 환멸, 자기 검열만 남았습니다."31기 기자들의 성명 발표가 있고, 그 뒤 새 노조 집행부 13명에 대한 중징계가 내려지자 2월 6일 33기(2007년 1월 입사) 기자 23명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들불이 번지는 양상입니다.
33기 기자들은 새 노조 집행부 13명의 징계에 대해 "1년이 훌쩍 넘은 합법 파업을 징계하는 그 집요함, 참 징그럽다"고 비꼬았고, 이화섭 신임 보도본부장에 대해서는 "대놓고 MB 편드는 뉴스만은 하지 말자며 보도본부장 바꾸자 했더니, 전임자를 묵묵히 뒤따르신 분을 찍어 보내는 무식함, 참 대단하다"고 야유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 사유도, 절차도, 수위도 비상식적인 징계는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 권력의 눈치만 보는 인물의 본부장 임명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 취재 현장의 후배들이 돌이나 맞게 만든 인물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밝히고, "기자협회와 노동조합, 동료와 선후배들의 확고한 대응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나꼼수'와 '뉴스타파'가 사랑을 받는 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