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에는 떡 만둣국이 배식됐다.
조호진
권사님, 명품 가방 도둑으로 몰렸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상왕의 아내로 호가호위(狐假虎威·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하며 천하를 호령하며 살아온 권사님이 도둑으로 몰렸으니 그 망신살이란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을 것입니다. '내 몸에 치렁치렁 걸친 목걸이, 반지, 외투, 구두 등의 명품 중에 명품을 합치면 그값이 얼만 인데 기껏 1000만 원짜리 가방이나 탐하는 여자로 취급하다니….'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권사님, 아침에 권사님 연배인 칠순의 중국동포 김씨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박스를 주으러 가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중풍에 쓰러져 누운 마흔 네 살짜리 딸을 돌보고 있는데, 본인 또한 심장병 환자라고 합니다. 이들 모녀는 벌집이라 불리는 단칸방을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7만 원을 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종일 종이상자를 주어 1만 원에서 2만 원가량 번다고 합니다. 월수입 40만 원가량에서 17만 원을 월세로 떼어내면 20만 원 조금 넘게 남는데 그 돈으로 약값대고 쌀 사고…. 이 엄동설한에도 연료비가 없어서 솜이불 뒤집어쓰고 지낸답니다.
2~3년 전만 해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땐 박스 줍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2~3만원 벌이도 했는데 갈수록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벌이가 시원찮다는 것입니다. 박스를 줍다가 도둑으로 몰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근 아파트나 빌라에 쌓아 놓은 박스를 들고 오다가 경비에게 붙들려 '도둑년'으로 몰린 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박스를 치워주면 고마워했는데 세상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경비들도 박스로 라면 값이라도 벌려고 나섰답니다. 1만 원을 버는 날은 시무룩해지고 2만 원 쯤 버는 날이 신이 나서 돼지고기 한 근을 끊어다가 딸과 함께 먹는답니다. 고기를 양껏 먹진 못하지만 행복한 웃음을 나눈답니다.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합니다. 상왕의 아내이신 권사님은 호가호위하는 이 세상에서 영생하고 싶으시겠지만, 김씨 할머니는 병들고 지친 이 세상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내 딸을 누가 돌봐줄까'가 염려돼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특급호텔 피트니스센터 여성클럽 회원이신 루이뷔통 도난신고 여성과 권사님은 아셔야 합니다. 그 명품 루이뷔통 핸드백값은 김씨 할머니가 2년하고도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종이상자를 주워 모아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을.
이 추위에도 불을 때지 못하고, 돼지고기 한 근 끊을 때도 큰맘 먹어야 하는 중풍병자 모녀에게 1000만 원은 그냥 돈이 아니라 목숨입니다. 그 돈만 있다면 이들 모녀의 얼음장 방에 불기를 불어 넣을 수 있고, 돈이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는 딸을 재활병원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이 목숨 부지가 날마다 위태로운 이들 모녀에게 여성클럽 회원권 8000만 원은 상상조차 불허하는 고액입니다.
이상득 장로님, 그리고 권사님!
두 분의 호가호위는 누구의 것입니까. 루이뷔통을 비롯해 치렁치렁 감싼 그 명품은 누구의 것입니까. 자신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쌓아두지 못한 7억 원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 권력이, 그 명품과 거액이 두 분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중풍병자 모녀를 비롯해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이 가리봉을 비롯한 변두리 동네와 산간벽지에서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서러워서 죽어가는 이 세상에서 '내 돈 내 맘대로 쓰든 감추든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외면할 수 있는 건가요.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박스를 모으다 들킨 칠순 노인이 도둑입니까? 아니면 7억 원을 차명계좌로 감춘 장로님이 도둑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8000만 원 대 여성클럽 회원이자 루이뷔통 절도범으로 몰렸던 권사님이 도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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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장로님, 7억이면 이 사람들 7년 배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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