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뚜벅이 행진
오도엽
뚜벅이들이 거리에 희망 발걸음을 알리는 스티커를 붙이는 선전 작업을 하다 스티커 뒷면 종이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지나가는 한 시민이 야무지게 말한다. 맞다. 쓰레기를 길거리에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하물며 평생을 공장에서 일만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버려서야 되겠는가. 정리해고자 살생부 명단에 오르는 순간, 더는 노동자도 사람도 아니다.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된다.
쓰레기를 길에 버리는 사람을 보면 '안 된다'고 말할 줄 아는 시민의식처럼, 사람을 길거리에 내버리는 정리해고 사업장에게도 '안 된다'고 말할 줄 아는 시민들이 많았으면 한다. 사람을 폐기처분하는 경영주에게는 따끔하게 말하자.
"쓰레기 버리듯 사람을 길거리에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뚜벅이가 아니다. 경찰들이 보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분홍빛 '희망 뚜벅이' 몸자보도 입지 않았다. 난 뚜벅이가 아니라 그림자다. 그들의 힘든 발걸음에 이어져 함께 걷는 뚜벅이 그림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들은 성의가 없다. 글이 끝나면 다시 읽지도 않는다. 다듬지도 않는다. 더구나 문학적 장치나 묘사도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허접한 글이고, 시인의 업을 무시한 직무태만의 글이다.
하지만 여기에 새겨진 문자들은 내 발바닥이 절망의 땅 곳곳에 발자국을 남기며 발가락 사이사이 배여 나온 땀들로 쓴 글이다. 그래서 난 이 문학적 가치를 무시한 이 기록이 내게 가장 소중한 글쓰기가 되리라 자부한다. 이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무수한 희망 뚜벅이들의 발걸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안양을 지나 광명시에 들어서자 55년만의 추위는 사라졌다. 뚜벅이들이 쉼 없이 내뿜는 입김들이 추위를 날려버리고 등줄기에 땀을 배게 한다. 제52보병사단이 있는 사거리에 다다르자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마중 나와 있다. 괜히 눈물이 난다. '쓰잘데없이, 참.'
광명사거리에 도착했을 때도 광명시 공무원, 병원 노동자들이 뚜벅이를 마중나와 광명시장에서 따뜻한 칼국수를 대접한다. 가는 길마다 따뜻한 차를 끓여 나오거나 간식과 박수를 보내주는 시민이나 노동자를 볼 때마다 절망의 시절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뚜벅이들은 이런 작은 연대의 마음에 행복해하고 힘을 얻고 전진한다.
광명사거리에서 시민 선전전을 마친 희망 뚜벅이들은 다시 서울로 입성해 성공회대학교로 왔다. 이곳에서 희망버스를 기록한 '버스를 타라'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하종강 선생의 강연이 있다.
내일(3일)은 오전 9시 부천역에서 희망 뚜벅이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뚜벅이들은 그 발걸음을 함께 할 이들을 손모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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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버리듯 사람을 길거리에 버리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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