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1] 재벌가 자녀의 제과 외식업 철수 결정 내역.
새사연
재벌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를 앞두고 여당까지 재벌개혁을 들고 나오니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것일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이미 금권과 언론, 관료들을 쥐고 있는 재벌이 그 정도에 꼬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사실 한국의 재벌은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몸을 사리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재벌 3세 자녀들의 분할 상속과 분할 승계 절차다. 상속과 승계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재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는 차기 정권 임기 중에 3세 분할 승계를 매듭지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대사를 앞두고 빵집 같은 작은 문제로 인해 현재의 재벌 체제가 흔들리면 안 된다. 빵집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주로 대기업은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국내 유통재벌들의 SSM(기업형 슈퍼마켓) 사업 확장과 최근 재벌 자녀들의 빵집 사업 등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국내 시장과 산업에 대해 엄청난 장악력을 행사하는 독점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빵과 커피, 순대와 청국장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산업 전 영역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재벌을 향해 국민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핵심문제 재벌의 이런 문제는 '경제력 집중'이라고 표현한다. 경제력 집중은 ▲특정 제품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시장 집중' ▲총수나 가족에게 재벌 그룹의 경제적 자원의 배치와 사용 권한이 집중되는 '소유 집중' ▲산업이나 제조업 일반이나 국민경제 전체와 같은 광범위한 경제영역에서 특정한 기업집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집중'으로 구분된다. 한국 재벌의 경우 특히 일반 집중이 주의를 요하는 문제이다.
특정 기업집단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면, 즉 일반집중이 심화되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낳게 된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거대기업 집단들, 미국의 트러스트, 독일의 콘체른, 일본의 계열(系列)이 모두 그러한 우려를 일으켰고 특히 독일과 일본의 기업집단은 파시즘의 경제적 기초라는 지목을 받았다.
결국 미국 최초의 트러스트 스탠더드오일의 해체,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독일 콘체른과 일본 계열의 해체로 연결된 것이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이 가져온 역사적 결말이었다.
한국의 재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 재벌은 50여 년 정도의 짧은 역사에도 1970년대 말의 율산그룹 파산과 구조조정이 있었고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재벌체제의 부분해체와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고, 환란에 의한 외부적 압박으로 재벌 대기업 집단의 절반 가까이가 해체되는 운명을 경험했다.
그런데 2012년 지금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총생산 대비 재벌 집단의 자산이나 매출액 규모를 측정해보면 현재의 재벌 경제력 집중은 대체로 거의 외환위기 당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연구들도 한결같이 "한국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이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일정 정도 감소하였으나, 구조조정이 일단락 된 2002년을 기점으로 하여 다시 상승하여 2011년 현재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친 기업 정책을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 정부 4년 기간 동안 경제력 집중이 급속히 진행되었다는 것은 모든 자료에서 확인된다.
재벌 3세 상속과 승계로 경제력 집중 심화 우려특히 최근에는 재벌의 사업 영역이 빵과 순대를 거론할 정도로 다양해졌다는 점, 수출시장 중심의 제조업보다는 국내시장 중심의 서비스 분야로 업종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이른바 업종 다각화가 확대된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개 재벌 기업집단의 "평균 영위업종 수가 2002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상승하여 2001년 10.6개 업종에서 2011년 17.1개 업종으로 대폭 증가하여 영위업종 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기업집단의 다각화 활동이 활발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런데 재벌 3세의 분할 승계과정은 필연적으로 또 한 번의 경제력 집중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재벌가의 각 자녀들이 맡고 있는 계열 부분을 키워서 분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자녀들이 분할 상속을 통해 파생 재벌그룹을 만들어내면서 더욱 커다란 재벌 가문을 만들어간 사례를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2세대 재벌 가족들의 분할 승계와 파생재벌 탄생의 역사를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최상위 재벌 그룹인 삼성과 현대, 엘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완전히 2세대 분할 승계가 완료되면서 다수의 파생재벌을 탄생시켰다. 파생재벌들 역시 업계의 상위로 진입했고, 이들을 모두 합쳐 전체 재벌 가문의 경제력 집중도를 계산해보면 그 정도는 훨씬 상승한다.
삼성은 씨제이(14위), 신세계(16위)를 포함하여, 현대는 현대차, 현대(18위), 현대 중공업(6위), 현대 백화점(26위), 현대산업개발(33위)을 포함하여, 엘지는 지에스(7위)와 엘에스(13위)를 포함하여 계산해보았다. 그 결과 국내 총생산 대비 5대 재벌의 매출액 비중은 55%에서 70%로 뛰어 오르고, 순이익 비중은 4.5%에서 5.6%로 뛰어올랐다. 결국 외환위기로 인해 재벌의 절반이 해체되었다지만, 살아남은 거대 재벌들은 2세 분할 승계과정에서 친족들로 구성된 새로운 파생재벌을 만들어내면서 해체된 재벌의 빈자리를 메워갔다.
재벌을 추적해왔던 경제개혁연대 등에서 이미 2011년 3세 상속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다. 재벌 3세 자녀들로의 분할 승계는 매우 가시적인 반경 안에 들어왔으며 차기 정권 안에 모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차기 정권은 현재의 재벌 총수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와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새로운 3세 재벌체제의 구조가 착근되려는 시점에서 재벌구조에 대한 규제의 틀과 질서를 국민경제 차원에서 세워두는 것은 향후 10년 이상의 재벌체제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선거용 정치구호로 내용도 없이 함부로 재벌개혁을 고창하다가 선거 끝나면 폐기해야 할 그런 성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음 정권이 상대할 사람은 이건희 아니라 이재용특히 현재 압도적인 1, 2위 재벌로 다른 그룹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는 삼성과 현대차의 분할승계는 매우 구체적으로 임박해있다. 우선 삼성을 보자. 삼성은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재용 사장과 두 딸로의 그룹 구획과 지분 승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
[그림1] 참조).
이재용 사장을 중심으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전자와 금융을 모두 포괄하는 삼성그룹의 승계 작업이 막바지에 왔다. 동시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중심으로 호텔, 레저, 바이오 등의 업종을 특화하고, 이서현 부사장은 광고와 패션 등을 중심으로 특화하여 파생재벌로 분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