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군가' 공모 소식을 전하는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누리집
요샌 국민을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게 유행인가 보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바꾸는 데 국민들에게 당명 공모를 하더니, 국방부는 '국민군가'를 공모해서 당선작에는 상금 5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국민'에도 관심이 없고, '군가'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지만, 500만 원이란 말에 '나도 한번 도전해 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일 텐데…' 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사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내가 무슨 국민군가를 만들겠다고. 나는 조금 유명해지고 인기 있으면 무조건 '국민'을 들먹이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든다. 죄다 국민여동생,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가수로도 모자라 국민아이돌.
무슨 '국민'자 안 붙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냥 '국가대표 4번 타자' 정도로 하면 될 것을 꼭 '국민타자'라고 부르는 게 못내 불편했다. 그래도 백번 양보해서 그냥 '모든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호감을 느낄 정도로 인기 있는' 이라는 의미로 '국민'을 붙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가 앞에 떡하니 '국민'을 붙여 놨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군가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일 거다. 모든 사람이 군가를 꼭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기분이 언짢지만 이 부분은 그냥 넘기고, 과연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대체로 좋아하는 군가가 가능할지 생각해본다.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군가라... 이게 될 리가 있나 멜로디나 가사가 좋거나 노래를 부른 가수의 가창력이 좋으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많이 듣고 익숙한 노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들, 남성 가운데서도 병역거부자들이나 장애인들, 공중보건의나 방위산업체, 공익근무로 군입대를 대체한 사람들, 하다못해 높으신 아버지 둬서 군대 안 간 사람들까지 따지면 우리 나라에서 군대에 가서 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비율은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칠 거다. 상황이 이러니 애초에 익숙함을 무기 삼아 '국민' 군가 반열에 오르기란 참 쉽지 않다.
그렇담 방법은 노래가 '겁나' 좋거나, 노래를 부른 가수가 듣는 이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해야 할 거다. 먼저 가수를 살펴보자. 국방부는 이미 1월 중순, 김형석이 작곡하고 알앤비(R&B) 가수 박효신이 부른 댄스풍 군가 <나를 넘는다>를 국민군가로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망했다. 세상에 김형석이 작곡하고 박효신이 불러도 히트가 안 된다면 대체 누가 불러야 한단 말인가?
김광석이라면 가능할 거다. 일찍이 <이등병의 편지>로 군 입대를 앞둔 청춘들의 가슴을 후벼 파지 않았던가. 하지만 김광석이 살아 돌아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자아내지 않고선 가창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 마음을 울릴 수 없을 텐데, 그런 가수가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가수 섭외가 어렵다면, 노래를 잘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거다. 국방부도 아마 이렇게 생각한 거 같다. 그러니 국민군가를 공모해 상금까지 걸었을 테지. 행진곡 멜로디에 힘찬 가사를 붙이면 사람들이 쉽게 외울 순 있겠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오래 남을 거 같지는 않다.
과거 투쟁가들 가운데서도 선전 도구로서 역할만 극대화시킨 노래들은 그 당시에는 사람들 뇌리에 강하게 남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잊혀갔다. 군가도 마찬가지다. 선동하는 듯한 가사와 멜로디라면 지금 군복무 중인 군인들에게는 널리 퍼지겠지만, 군대 이미 다녀온 사람이나 군대 안 간 사람들한테까지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