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을 방지하는 의식이 포함된 영동굿 용왕맞이마당.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샤머니즘에 의존해 액을 쫓는 행위는 왕실이나 서민층에서만 유행했던 게 아니다. 겉으로는 샤머니즘을 배척하는 사대부 집안에서도 막상 급할 때는 "어디 용한 사람 없어?"라며 샤먼을 물색하곤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례가 <태종실록>에 실려 있다. 어느 사대부의 부인이 집안의 액을 쫓기 위해 영험한 시각장애인 승려를 초빙했다. 이 스님은 불경을 읽는 방법으로 액을 제거하곤 했다. 절반은 승려, 절반은 샤먼이었던 것이다.
부인이 스님을 불러 액을 쫓아내는 일만 했다면, 이런 일이 실록에까지 기록되었을 리는 없다. 사대부 집안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을 쫓는 의식과 함께 너무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기에,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고 실록에까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태종 16년 2월 25일자(1416년 3월 24일) <태종실록>에 따르면, 부인은 시각장애인 스님을 초청한 뒤 "이것 좀 드셔 보세요"라며 밤을 건넸다. "밤 맛이 어떠세요?"라고 묻자 "매우 다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부인은 "밤보다 더 맛있는 게 있는데요"(有勝栗之味焉)라고 말했고, 얼마 뒤 부인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정에서는 두 남녀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곤장 80대를 때려야 하는데도, 하도 기막힌 사건이라 특별히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사대부 여인이 관련된 일탈행위라서, 법규에도 없는 극형을 가한 것이다.
이들이 사형을 당한 것은 샤머니즘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록의 등장인물들은 사대부 가문에서 그런 의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사대부 부인이 승려와 간통을 범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했을 뿐이다.
이런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사대부들도 샤머니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형적으로는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씀하시지 않았다"며 샤머니즘을 터부시했지만, 집안에 우환이 들어 다급해지면 남들과 똑같이 샤먼을 찾곤 했던 것이다.
왕실로서는 사대부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사대부들이 뭐라 하든 말든, 왕실에서는 샤먼이나 점쟁이의 제안대로 거처를 옮기기도 하고, 법사들을 불러 액을 쫓기도 하고, 임금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푸닥거리를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왕실로서는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무녀가 잠자는 왕을 빤히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액을 쫓아내려 한 사실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왕실이 액을 쫓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은밀한 구중궁궐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왕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는 왕실 사람들이라면 왕을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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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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