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대에서 내려다본 광풍각(앞)과 제월당(뒤)
이승철
그런데 거의 500여년, 더구나 근년 들어 자주 퍼부은 집중호우를 어떻게 견뎌내고 저렇게
말짱할 수 있단 말인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흥미진진한 수수께끼를 푸는 소년처럼 주변과 계곡을 살펴보았다. 담장 끝 쪽 골짜기 길이 열려 있을 뿐 눈에 확 띄는 그 무엇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계곡물이 넘쳐 열린 길 위로 흘렀다면 담장은 절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하! 바로 저거야, 계곡 물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저 한 줄의 담장 받침돌 밖에 없잖아요?"일행 한 사람이 손뼉을 탁 친다. 바로 그것이었다. 담장 밑 계곡이 넓고 높게, 그리고 아주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담장은 그냥 경계표시에 지나지 않았다. 뻥 뚫린 담장 밑 계곡으로는 황소라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고 크게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계곡물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니 비록 어설퍼 보이는 담장 받침도 무너지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뭐랄까? 마치 치마 걷어 올린 여인네의 종아리, 흙돌담의 모습이 그랬다. 요즘이라면, 아니 그 시절에도 어느 마음씨 좋은 양반 댁이 저렇게 담장 밑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었을까? 꼭꼭 닫아 가두는 것이 담장의 역할 아니던가. 그런데 제 가랑이 활짝 열어 가랑이 사이로 산바람, 시냇물, 온갖 짐승들까지 드나들게 만든 저건 담장인가? 문인가? 참으로 놀라운 발상과 배짱의 소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