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무법천지 약육강식의 방송광고시장, 어찌 할 것인가

등록 2012.01.24 11:48수정 2012.01.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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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과 연초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했던, 그리고 아마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는지 모르는 미디어렙법에 대해 결말을 지어야겠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신들에게 중요하면서도 모르고 있을 일반 국민들을 위해 이 제도에 대해 설명도 해야겠다. 자칫 밥그릇싸움으로 오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렙이란, 방송사의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관(구)이다. 방송사의 직접 영업을 차단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하는가? 광고수입으로 먹고 사는 방송사가 광고주를 상대로 직접 영업을 하게 되면 대기업의 회유와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광고를 얻기 위해 대기업의 압력에 굴복하면 정보가 차단되거나 왜곡되어 국민의 알권리가 훼손되고, 시청률경쟁의 격화로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980년 이후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미디어렙으로서 지상파방송사의 광고영업을 독점으로 대행해 왔다. 전두환 정권이 언론통폐합을 강제하면서 명분을 얻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 남겨놓은 뜻밖의 보물이다. 그 당시는 지상파방송 외에는 없었다. 따라서 KOBACO는 자연스럽게 지상파방송의 광고영업을 대행했다. 그 후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IPTV 등이 생겼지만 이 체제를 크게 흔들지 않았다.

다만, 소위 시장경제에서 최소한 독점은 해소되어야 한다는 불만을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임으로써 국회는 법을 개정해야 하는 임무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MBC와 SBS의 눈치를 보며 직무를 유기해왔다. 그 사이 조중동방송이 방송광고시장에 등장하면서 사단이 발생했다. 예견된 일이었다. 조중동방송은 지상파방송이나 다름없는 위상을 갖고 있기에 광고영업을 미디어렙이 대행하도록 법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편, 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KOBACO는 유명무실하게 되어 SBS가 자체적으로 미디어렙을 설립하여 사실상 직접영업에 들어갔다. MBC도 들썩였다. 방송광고시장이 바야흐로 무법천지에 약육강식의 난장판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방송은 0%대의 시청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광고를 갈취하고 있다. 이건 정상적인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정부도 정부가 아니요, 국회도 국회가 아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능한 정부, 이렇게 무책임한 국회가 어디 또 있을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종교방송과 지역방송 등 중소방송사가 유탄을 맞아 피해를 보고 있다. 다급해진 언론노조가 국회, 특히 민주당, 그 중에서도 문방위 국회의원들을 압박하여 미디어렙관련 '졸속입법'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것이 작년 연말의 '연내입법' 소동인 것이다.       

이쯤 했으면, 총선이 세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사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새 국회가 개원 되는대로 바로 통과되도록 준비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언론노조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휴가 지나면 다시 공세를 펼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도 대의명분보다는 지역방송의 민원을 대행하느라 끝까지 추태를 연출할는지도 모른다. 하여 이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시쳇말로 명토박아두고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미디어렙법은 중소방송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법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CBS를 제외한 종교방송들은 KOBACO 체제에 편승하여 설립 운영되었고, 지역민방은 SBS가 설립될 때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민의를 거스르며 탄생하여 역시 KOBACO 체제에 편승하였다. 이 방송사들이 잠시 피해를 입는다고 하여 방송편성과 영업의 분리라는 대의명분을 팽개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인 고려를 해볼 때, 사실은 아무리 다급해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언론노조는 중소방송사 노조원들의 처지를 외면하기 어려워 조급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도리는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염치를 알아야 한다. 공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용기(知恥近乎勇)라고 했다. 그런데 언론노조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도리어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솔직하게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 것이다.


노조는 그렇다 치고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의 부화뇌동은 또 다른 문제다.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중소방송사(조합원)를 위해 누더기법이라도 졸속입법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이미 시민단체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라면 무릇 명분을 지키고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지 노조의 소탐대실에 동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을 위한 처신도 아니다.

무릇 지도자는, 그리고 지식인은 두루 폭넓게 배우고(博學) 자세히 물어 확인하며(審問),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분명하게 사리를 분변하여(明辨), 그렇게 학문(學問)하고 사변(思辨)한 것을 돈독하게 실천하는(篤行)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학인(學人)이라면 미디어렙법의 쟁점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을 하고 행동에 나서야지 싸움 구경하면서 훈장 노릇이나 하듯 하면 안 된다. 하물며 대의를 버리고 소리(小利)의 편에 서서야 되겠는가?

SBS가 자체 미디어렙 회사를 설립하여 직접 영업을 하는 것은 위법이다. 아무리 KOBACO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해도 법이 개정될 때까지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조중동방송의 약탈행위와 더불어 방치하고 있는 정부가 한심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SBS의 탈법행위는 재허가 심사에서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이 부분은 민주통합당이 위엄을 세워 일갈해도 좋을 것이다). 조중동방송의 작태는 정부를 질타하며 잠시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중소방송사 노조의 현명한 판단을 구한다. 종교방송은 종교의 입이다. 종교 그 자체다. 역사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종교는 종교 아닌가? 이 어려운 시기에 아픔을 함께 해야지 자기 아픈 것만 생각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언론매체' 아닌가? CBS는 전두환 정권이 광고방송을 폐지했을 때도 살아남았다. 다른 종교방송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종교방송이든 지역방송이든 노조는 사측에 대책을 요구하면서 정도를 지켜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어떻게 이만큼이나마 언론민주화를 위해 희생해온 선배 언론인들을 대하려는가? 언론노조는 이제라도 상식을 회복하고 원칙으로 돌아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은 추태를 그만 부리기 바란다.
#미디어렙 #언론노조 #민주당 #방송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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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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